코어매거진 (COREMAGAZINE) [titbit]
다시, 걷다가 달린다
코어매거진이 다시 달린다. 템포는 빨라졌고 흥은 넘친다. 전작 EP [Nap](2016)과는 완전히 다른 계절, 다른 행성이다. 우리가 바라던 코어매거진이다. 모든 밴드에겐 저마다의 색채가 있다. 코어매거진에게 어울리는 정체성은 출력을 최대로 끌어올린 모습이다.
[titbit]. 흥미로운 정보, 맛있는 한 입이라는 뜻이다. 조밀하게 짜인 트랙들을 듣고 나니 제목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흥미로울뿐더러 맛깔스럽다. 송 라이팅은 섬세하고 편곡과 녹음은 정교하다. 그러니까 이건 사운드의 힘이다. 낡지 않은 사운드. 신선하다. 그저 시류를 따라간다는 말이 아니다. 스스로 도태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는 의미다. [titbit]은 객관적인 증거 자료다. 무엇보다 귀를 잡아당기는 것은 보컬리스트 SEEN의 음색이다. 허풍이 아니라 올해의 발견이다. 차갑고 건조한 보컬은 은밀하게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을 감추고 있다. 그녀는 능숙하게 악기 앞으로 나섰다가 빠지며 사운드를 통제한다. 조율한다. 그루브를 탄다. 터질 듯 터질 듯 애를 태운다. 세기를 조절할 줄 아는 베테랑 보컬처럼 노래한다. 듣기엔 편하지만 막상 하기엔 어렵다는 뉴웨이브/팝 록 보컬. 이렇게나 잘 소화하다니.
트랙에 대해 말해볼 차례다. 가장 좋은 반응을 얻을 것 같은 곡은 첫 번째 타이틀 곡 [Tracy]다. 신스가 물결치다 강렬한 류정헌의 기타가 뒤따른다. 일견 관습적인 것 같지만 오히려 레퍼런스를 적절히 사용해 트렌디한 느낌을 전달한다. 튀지 않으면서 단단하게 연주를 받치는 손원석의 베이스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설치미술가 트레이시 에민으로부터 아이디어를 취했다고. 오프닝 트랙 [It's on]은 조금 더 록에 근접해 있다. 개러지 록 리바이벌에서 영감을 얻은 듯한 타이트하고 거친 편곡, 4분 내내 긴장감을 잃지 않는 구성. 앨범의 문을 열기에 최적화된 트랙이다. 공연장의 에너지와 만나면 더 힘을 받을 것 같기도 하다. 약자들의 분노를 세련되게 정제해 낸 [Underdog]은 독특한 트랙이다. 툭툭 던져대는 SEEN의 보컬과 빈틈을 메우는 류정헌의 백 보컬이 기묘한 조화를 이룬다.
가사의 깊이도 더해졌다. “우린 어른인 적 없고 한 번도 철든 적 없다”고 반추하는 [Come Home]에서 밴드는 댄스를 멈추고 잠시 삶을 돌아본다. 숨소리가 느껴질 정도로 가까이 다가선 SEEN의 보컬, 관조하는 듯 읊조리는 백경호(Blocs)의 보컬. 과거를 미화하기보다는 이 순간에 충실하겠다는 수줍은 의지. 멋지다.
사실 소개글이라는 게 별거 없다. 뭘 써도 사족이니까. 정성 들여 만든 음악에 누나 안 끼치면 다행이다. 간단히 갈무리한다. 코어매거진을 나름 오래 지켜봐 온 사람으로서 이번 앨범은 정말 추천이다. 행보에 의아한 적도 있고 실망한 적도 있지만 어디 커리어에 흠집 하나 없는 밴드 있었나. 그들은 묵묵히 걸어가다 달린다. 그러다 길을 제대로 찾았다. 발매되기 전까지 플레이리스트에 넣어 두고 다녀야겠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제임슨 한잔하면서 후일담도 들어 보고 싶다.
글. 이경준 (대중음악평론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