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endar]로부터 시작된 여행 프로젝트, 새로운 세계로 확장되다
RAINBOW99의 다섯 번째 정규앨범 [EUROPE]
'RAINBOW99'(본명: 류승현)는 참으로 꾸준한, 그야말로 걸음을 멈추지 않는 음악가다. 전자음악가로, 사운드 디자이너로, 프로듀서로, 그리고 기타리스트로서 그가 그간 걸어온 행보, 그리고 불과 7~8년 남짓한 시간 동안 수북하게 쌓아온 디스코그래피가 이를 증명한다.
2004년, '어른아이'의 기타리스트로 음악 활동을 시작한 그는 '하이미스터메모리', '올드피쉬', '옥상달빛', 'K.AFKA' 등 다양한 아티스트들의 음악에 그의 기타 연주를 얹었다. 이윽고 본인 스스로가 'RAINBOW99'라는 이름을 내걸고 음악 활동의 주체로서 등장한 것은 2009년, 싱어송라이터 '시와'와 결성한 프로젝트 '시와무지개'를 통해서. 이후 솔로 아티스트 'RAINBOW99'로, 또 다양한 프로젝트의 구성원으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왕성한 창작 활동을 펼치고 있다. '다작'으로 여길 만큼 꾸준하게 작품을 공개하고 있는 그이지만 그의 경우 단순히 자기복제적 다작이 아니라 다양한 영역의 예술가들과의 교류, 그리고 새로운 장소로의 여행 등을 통해 끊임없이 영감들을 충전하며 매번 다른 컨셉트의, 각각의 뚜렷한 존재감을 지닌 결과물을 내놓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예컨대 2015년 내내 담양, 동해, 제주도, 목포, 태백, 당진 등 국내의 여러 장소를 여행하며 그곳에서 얻은 영감, 감상을 음악으로 만들어 매달 싱글을 발표하고, 이윽고 이를 집대성해 2016년 초에 정규앨범 [Calendar]로 묶어 발표한 여행 프로젝트는 이런 그의 캐릭터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좋은 예일 것이다.
'여행'의 컨셉트는 2016년, 아티스트의 유럽여행을 통해 더욱 넓은 세계로 확장된다. 앨범 [EUROPE]은 체코(프라하), 헝가리(부다페스트), 크로아티아(자그레브, 자다르, 플리트비체), 독일(뮌헨, 베를린, 드레스덴)을 경유하는 아티스트의 두 달간의 긴 여정을 담은, 일종의 여행기적인 음반이다. 두 개의 파트, 스무 개의 트랙으로 구성된 이 앨범에서 그는 프라하의 일출, 자다르 해변, 베를린의 가을밤, 독일의 토이펠스베르크(악마의 언덕), 부다페스트 왕궁 등 여행 중 그에게 영감을 준 장소, 공간들을 테마로 전자음악, 블루스, 월드뮤직 등을 넘나들며 특정한 장르나 무드에 국한되지 않는 다양한 형태로 그가 느낀 감상들을 청각화한다. 유럽에서 스케치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한국에서 작업을 해 완성한 첫 번째 파트가 전자음악적 성격이 강하다면 여행지 곳곳에서 즉흥적으로 만들어낸 선율을 현장에서 연주하고 레코딩, 믹스까지 완성한 두 번째 파트는 보다 어쿠스틱한 사운드와 함께 월드뮤직, 블루스의 색채가 짙다. 전자음악 그룹 'ESAO'의 '혜지박'은 첫 번째 파트의 트랙 다수에 보컬, 신스 연주로 참여하며 이 파트 전반에 감도는 환상적인 무드에 더욱 힘을 실었고 몇몇 트랙에서 현장의 소리를 레코딩해 소스로 활용한 점도 흥미롭다.
스무 트랙, 총 러닝타임 96분 34초의 더블 앨범. 바야흐로 음원의 세상이 도래하여 매일 수많은 싱글들이 범람하는, 그리고 이내 사라져버리는 지금 시대에서 이건 어쩌면 다소 무모한 시도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실리의 관점일 뿐, 사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앨범'이기에 줄 수 있는, 3분 30초짜리 싱글은 감히 견줄 수 없는 크기의 어떤 감동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 여기, 아티스트가 저 멀리 이국의 도시들, 풍경들을 마주하며 느꼈을 갖가지 감정의 조각들을 빼곡하게 담은 96분이 당신 앞에 놓여있다.
글: 김설탕(POCLANOS)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