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니 [3]
“독보적인 바이브를 담은 사운드”
예술이란 특정한 대상이나 현상에 대한 견해나 느낌을 아름다운 작품을 통해 표출해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표현 양식이다. 무엇이 아름다운 것이고, 무엇이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견해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예술이든 ‘자유’를 본질로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나올 수 없다.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는 범위 안에서라면 예술가는 제약이나 규제 없이 자신의 신념이나 의견을 피력할 수 있으니.
향니의 음악을 들으며 저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그들의 음악은 자유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향니는 사회 비판부터 성적 담론, 몽상가의 장광설에 이르기까지 거침없이 이야기를 쏟아내고, 록과 팝의 문법을 기만하거나 파괴해 장르 자체를 도마 위에 올리는 한편, 버스(verse)-코러스(chorus) 구조에 얽매인 선형적 전개를 따르지 않는다. 그간 발표했던 작품들을 살펴보면 명백해진다. 1집 [첫 사랑이 되어줘](2014)는 인디 록의 관성을 깨부수는 음악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이 발칙한 음악은 ‘단 한 번’으로 작별을 고하지 않았다. 잠시 숨을 고른 EP [2](2018)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충동’과 ‘혼돈’의 에너지를 뿜어낸 작품이었다.
향니의 작품들이 그 해의 ‘베스트 앨범’이진 않았다. 하지만 ‘그 해의 문제작’이었다고는 생각한다. 확신한다. 대세인 시티팝 따위에는 신경 쓰지 않겠다는 당당함이 있었다. 록인지 모던 록인지 한 번 구분해 보라는 듯한 도발이 있었다. 사이키델릭과 포스트 펑크가 뒤엉켰다. 슈게이징이 끼어들고 댄스가 고개를 들었다. 우연성과 순간에 기대어 만들어진 곡들은 앨범이라는 건축물의 일관성을 뒤흔들었다.
2는 3이 되었다. '제목‘은 앨범의 주제나 콘텐츠를 미리 드러내기도 하지만, 사실 그와는 별 연관성이 없을 수도 있다. 의도는 잘 모르겠다. 숫자 하나 바뀐 것이 뭐 그리 중요하냐고 되물을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우리는 다시 혼란에 빠진다. 그런 의미에서 향니는 성공했다. 일단 있는 그대로 보자.
[3]은 향니의 세 번째 앨범이고, 두 번째 풀렝스 정규작이다. 그 전에 외형적 변화를 먼저 언급해야 한다. 멤버 둘이 다른 길을 택해 팀엔 다른 둘(이지향, 이준규)만 남았다. 따라서 이번 앨범은 듀오 체제로 변모한 향니의 첫 앨범이다.
듀오의 사운드에 주목하고 싶다. 전작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전환점이자 변곡점이다. [2]가 ‘사이키델릭 록 재해석’이었다면, [3]은 ‘록 서사의 재구축과 2기 향니 음악의 시발점’으로 보인다. 기존 록 음악이 강조했던 기승전결 내러티브를 찬란하게 거부하는 기묘한 댄스 플로어 트랙 ‘탐구생활’, 7분이 넘는 볼륨에 향니가 떠올린 해방감을 꾹꾹 눌러 담은 팝 싱글 ‘재건축’만으로 답은 나온다. 앞으로 향니가 하게 될 음악 방향을 제시하는 아방가르드 디스코 ‘핫소스’는 앨범의 하이라이트. 삐삐밴드와 로리 앤더슨(Laurie Anderson)을 끌어와 댄스 음악의 터치를 넣으면 이런 음악이 될까. 뭐가 되었든 향니만의 음악이다.
중반부를 넘어가도 힘이 떨어지지 않는다. 장점이다. 노이즈 록을 비튼 ‘느낄거야’, 재즈를 왜곡한 ‘누구보단’, 복고적 뉴웨이브 ‘어른에게’는 좋은 예시이다. 귀를 맴도는 선율 감각에 날카로운 풍자를 싣고(‘어른에게’), 행복에 대한 ‘썰’을 경쾌하게 풀어낸다(‘누구보단). 발걸음은 가볍지만 발바닥을 자세히 바라보면 묵직한 덩어리가 매달려 있다. 하지만 계몽이나 교훈을 강압하지는 않는다. 음악을 틀어놓고 웃다 춤추다 도취하다 보면 메시지는 자연스럽게 풀려 나오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저 즐겁고 걱정거리를 잠시 잊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썼다는 마지막 트랙 ‘바이러스의 노래’는 그 결정판이다. “포맷! 포맷!”이라는 후렴구가 깊게 각인되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샤워하다 무심코 따라 부르게 될 것만 같다. 컴퓨터 바이러스를 테마로 이런 곡을 쓸 수 있는 친구가 몇이나 될까.
이 앨범을 타인에게 권한다고 가정하자. 어떤 이유가 있겠는가. 나는 ‘저 독창적이고도 독보적인 바이브’를 들겠다. 비트의 오묘함과 소재의 독특함은 그 다음 이유다. 최근 대중음악의 트렌드를 관통하는 단어는 단언컨대 ‘바이브’다. ‘분위기’이면서 ‘분위기’만은 아닌, ‘흥’이면서 ‘흥’과 동의어는 아닌 단어. 이 단어만큼 향니의 신보를 잘 설명하는 단어는 없다. 넘실거리는 그루브와 터지는 바이브는 우리가 향니에게 기대했던 바로 그것이다. 모두가 공감할 수는 없어도 누군가는 빠져버릴 앨범이다. 최고가 아닐 수는 있어도, 그 누구의 뒤도 좇지 않는 앨범이다.
글. 이경준 (대중음악평론가/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