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은 사고파는 것이 아니야
황푸하 EP 앨범 [우리집] 발매
우리집
살지도 않을 거면서 계속해서 사들이는 집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서 도대체 집이란 무엇인가! 성실한 노동으로는 집 한 채 장만하지 못하는 이 땅에서 집이란 무엇인가! 큰돈을 벌 수 있는 건 부동산뿐이라며 너도 나도 기다리는 그 아파트란 무엇인가! 집값이 오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30년 된 포차를 쓸어버린 그 잔인함이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이 집을 소유하지 못하는데 반해 몇몇 사람들은 엄청난 집을 갖고 있는 이 대한민국에서 집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질문을 던지며 시작한다.
Track 1. 외부인
골목의 상인들이 지혜롭고 성실히 일했다. 조용한 동네에 사람들이 많이 오게 되었다. 흔히 말해 동네가 떴다. 외부인들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들은 좋은 옷을 입고 다닌다. 직접 골목 사이를 누비며 넓고 여유로운 땅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 땅을 더욱 좁고 복잡하게 만드리라 꿈을 꾼다. 이들은 동네에서 맛있는 돈까스 가게에 들어가 우걱우걱 돈까스를 먹는다. 그러면서 이 조그만 가게 자리에도 큰 기업의 가게가 들어오면 어떨까 상상해본다. 이들은 같이 부자가 되자고 주민들을 설득할 것이다. 1번 트랙 외부인은 복선이다.
Track 2. 인테리어
작은 집이 생겼다. 실크가 아니라 비록 합지지만 하얀색으로 벽을 도배했다. 하얗고 깔끔해진 집에 애정이 간다. 부엌과 거실이 붙었지만 뭐가 대수랴, 방이 넉넉하지 않지만 뭐가 대수랴, 누가 뭐래도 우리집이다. 무슨 가구를 채워 놓을까? 이 공간은 어떻게 쓸까? 책을 읽는 곳이 될까? 음악을 듣는 공간이 될까? 텅 빈 우리집은 지금 가슴 설레는 가능성이다. 페인트를 칠할까? 초록색 식물을 키울까? 어디서 사면 싸고 예쁜 걸 살 수 있을까? 뭐부터 필요할까? 친구들의 조언은 하나씩 쌓인다. “몰딩과 문에 페인트부터 칠해야 한다.” “카펫을 사야 한다.” “이케아 조명을 놓아야 한다.” “손님을 위한 공간이 있어야 한다.” 정답은 없다. 지금 우리집에 필요한 건 내게 맞는 인테리어다.
Track 3. 러브송
공간은 누군가와 함께 할 때 추억이 된다. 공간을 보면 그 사람이 떠오를 것이고, 그 사람을 보면 공간의 향기가 날 것이다. 꿈꾸는 추억이란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다. 그저 동네를 함께 산책하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하는 것들이다. 일상을 함께 산다는 건 진실된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진실된 대화를 나누는 건 서로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것이며, 그것을 사랑이라 부른다. 그리고 사랑이란 당신의 아픔을 느낄 수 있는 공감이다. 아무리 전능한 신(神)이라 할지라도 타인의 아픔을 느낄 수 없는 신은 사랑을 모르는 무능한 신이다. 그 사랑, 사랑이 있고 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곳이 바로 우리집이다.
Track 4. 멀미 (feat. 김사월)
어떤 공간이라 할지라도 사랑은 가능하다. 행복하고 충분하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안에서 행복을 찾지 못했던 것일까. 충분치 못 했던 것일까? 아니면 불안했던 것일까? 자신의 노후와 훗날 자식의 집값까지 걱정됐던 것일까? 많은 사람들은 집값이 이미 하늘과 맞닿아버린 서울 근교에서 큰돈을 버는 방법은 투기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아파트가 올라간다. 조만간 집값도 이렇게 쉽게 올라갔으면 좋겠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집값이 오르면 그 집을 팔고, 다른 집을 살 것이다. 그 집 또한 팔 생각으로 산다. 누군가는 또 다른 땅에 아파트를 지을 것이다. 그들은 물론 그곳에도 눈길을 줄 것이다. 그들은 또 다른 계획을 세웠다. 우리집을 헐고 아파트를 올릴 거라고 한다. 같이 부자가 되자고 집주인을 설득한다. 어지럽다. 그들은 부자가 아직 되지 않아서 불행한 것일까? 그들은 큰돈이 없어서 사랑을 모르는 것일까?
Track 5. 공간초월(空間超越)
결론은 비극이다. 집을 빼앗겼다. 나의 사랑의 공간이 사라졌다. 함께 밥을 지어먹던 부엌이 사라지고, 햇살을 받으며 음악을 듣던 거실이 사라졌다. 우리의 웃음소리를 담아줬던 방이 사라졌다. 모든 걸 잃어버렸다. 하지만 우리집을 그리워하던 사람들의 만남은 계속되었다. 집 안에서 노래를 부르던 우리들의 노래는 거리에서 울려 퍼지기도 했다. 공간이 사라져서 우리의 사랑도 사라질 줄 알았는데, 서있을 공간을 잃어버린 사랑은 비로소 영원하게 되었다. 우리집은 공간을 넘어서게 되었다. 우리는 드디어 사랑을 눈으로 보게 되었다.
자화상 트리오
2집 앨범 자화상 보다 더욱 덜어냈다. 사운드적으로 더욱 간소화되었고, 담백하며 건조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 앨범에서는 콘트라베이스의 정수민과 바이올린의 황예지와 이뤄내는 자화상 트리오만의 균형의 미를 확인할 수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