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여러 형태로 나뉜다. 변해가기도 하며, 발전하기도 한다.
회색 도시가 무서워 방으로 숨어야만 했고, 그 좁은 방 안에서 일어나는 chzz! 의 감정변화를 담은 앨범이다.
chzz! [Room], 파라다이스에 숨긴 나의 골방
들을 게 넘쳐나는 세상이다. 굳이 음원 포털을 뒤지지 않아도 된다. 적당히 유튜브만 잠시 돌아다녀도, 사운드클라우드에 접속만 해도 정말 괜찮은 혹은 제법 괜찮게 들리는 음악과 플레이리스트를 손쉽게 한 무더기 접할 수 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사랑받는 특정 음악이라면 더욱더 그렇다. ‘chill’ 또는 ‘low-fi’와 같은 키워드가 어울리는 음악을 통해 힙한 감성과 예민한 신경을 다스리고자 하는 이들에게 요즘 세상은 더할 나위 없는 파라다이스가 아닐까 싶다.
싱어송라이터이자 힙합 프로듀서인 chzz!는 데뷔작 『Room』을 통해 그와 같은 파라다이스에서 갓 건져 올린 듯한 음악을 요즘 신예답게 들려준다. 나른한 그루브와 달콤한 멜로디, 시종일관 지글거리는 노이즈, 곡마다 다른 색깔과 매력으로 한껏 변조된 보컬과 신스의 음률 등이 그만의 몽환적인 세계를 완성한다.
특별한 것은 그에 담은 정서와 그것을 발전시켜가는 방식이다. 구체적인 상황을 묘사하는 대신 상대를 향한 짧은 발화나 독백으로 이뤄진 영어 가사는 이마저 불분명한 발음으로 음악 속에 유려하게 녹아든다. 구체적인 언어보다 방(room)의 분위기와 거기에 깃든 정서에 치중한 chzz!의 얼터너티브 알앤비가 국경 넘어 글로벌 팝으로 진화하는 순간이다.
앨범 재킷의 흑백 사진에는 피사체가 검은 그림자의 모습으로 담겨 있다. 잿빛의 풍경이 그를 둘러싸고 옭아맸기 때문일까? 잔뜩 흔들린 시선 속 실루엣은 고개를 숙인 채 움츠려 있다. 『Room』은 그렇게 웅크린 채 출발한다. 훈련을 통해 너를 향해 폭발하는 감정을 속삭이고(「express train」), 나만의 사막섬로 너를 초대하기도 한다(「desert island」). 그러나 간절한 감정과 외침에도 불구하고, 내 목소리는 밖에 닿지 않는다. 사람들은 심지어 내가 죽었다고까지 생각한다(「rooooom」). 애니메이션 속 영웅이 되어 내가 원하는 세상에 살아남고 싶지만(「anime」), 나는 여전히 조연배우에 불과하다(「supporting actor」). 마치 조각이 난 것만 같은 그의 가사들은 사실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져 있다. 다만 점차 발전하는 이야기 속 그의 감정은 마지막 순간, 이전보다 왜곡된 목소리로 불신과 혼란을 노래할 따름이다.
들을 게 넘쳐난다는 세상이다. 반대로 그만큼 진솔한 음악, 치열한 노래를 찾기 힘들기도 하다. 동시대에 훌륭한 알앤비 아티스트가 넘쳐나는 지금, 익숙한 파라다이스 위에서 그만의 굴로 들어간 chzz!가 특별하게 여겨지는 까닭이다. 그는 절대 적당히 쿨하고, 마음 편히 칠(chill)하지 않다. 감정에 감정을 덧칠한 그의 방에서 흘러나올 노래에 갈수록 더 귀를 기울이게 된다.
정병욱 (음악취향Y 필진,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