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쌀리나 [우리]
‘우리’가 되기까지
모든 밴드, 라고까지는 말할 수 없겠지만, 대다수의 밴드는 그들이 만드는 작품이 정확히 어떤 의미를 가지고 무엇을 그려내고 있는지 그 작품을 완성한 후에야—경우에 따라서는 한참 뒤에야—깨닫게 되는 것 같다. 그럴 때 밴드는 집단이라기보다 한 명의 사람과 같다. 타인이라면 얼마든지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으나 정작 그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는 데에는 나름의 시간과 노력이 들 수밖에 없는 그런 한 명의 보통 사람 말이다. 물론 그건 비단 밴드만이 아니라 어느 창작자에게 건 얼마간 똑같이 적용되는 얘기일 것이다.
지난 초여름, 한 밴드로부터 정규 앨범 디렉팅 제안이 왔다. 한 해를 시작하며 ‘올해는 들어오는 제안이라면 앞뒤 가리지 말고 무엇이든 다 해보자’라고 다짐한 터라 따지고 보면 그 일도 흔쾌히 수락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즈음 나는 2019년 후반 계획을 어느 정도 세워둔 상태였고, 그걸 무사히 실행하는 데만도 분명 적지 않은 시간과 에너지가 들 것이어서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거기에다 밴드가 있는 곳이 서울이 아닌 대구였다는 점도 나를 더욱 망설이게 했다.
하지만 그들이 보내온 데모 음원을 반복해 듣는 동안 내 마음은 그 일을 맡아야겠다는 쪽으로 슬며시 기울고 있었다. 콕 집어 명확히 설명하기는 어려우나 거기에는 내 마음을 근질이는 뭔가가 있었다. 군데군데 투박한 점도 있었지만, 송라이팅 면에서 잠재력이 엿보였다고나 할까, 개선의 여지가 선연했다. 더군다나 그 밴드는 구성원 네 명 모두가 송라이팅에 참여하고 있었다. 밴드로서는 흔치 않은 경우라 더욱 흥미가 갔다. 나는 그 제안을 수락했다.
그 후로 우리(즉, 나와 그 밴드)는 메시지와 통화, 음원 등을 끊임없이 주고받으며 의견을 나누고 수렴하여 그걸 하나씩 실행에 옮겼다. 나는 일정과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대구에 내려갔고 그때마다 밴드와 늦은 시간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반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곡들은 차츰 다듬어졌고 대구시 음악 지원 사업하에 훌륭한 환경에서 녹음할 수 있었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나는 무엇이든 화려한 수식이 붙는 것보다는 짧고 담백한 쪽을 선호하는 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솔직히 말해 [우리]라는 앨범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는 ‘좀 더 좋은 제목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우리’라는 말에는 분명 대중적이고 친숙한 울림이 있고 그게 하나의 강점이 될 수도 있으나, 그만큼 의미가 지나치게 열려있다는 단점도 있기 때문이다. 의미가 지나치게 열려있다는 말은 요컨대 모호하게 받아들여질 가능성 역시 높아진다는 얘기도 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은 한낱 기우에 불과했다. 작업이 후반으로 치닫을수록 [우리]라는 제목은 내 속에서 나름의 구체성과 존재감을 가지기 시작했으니까.
앨범은 “나는 생각해. 이 상황에서 벗어날 거야. 오늘 밤도 실패할 걸 알면서” (1번 트랙 ‘벗어날래’) 라는 얼핏 절규를 닮은 고백으로 시작해 “넘어진 자리에서 함께 하늘을 우러러보았고, 부푼 맑은 꿈 안에 하나가 되어... 다른 너는 나 자신이 되었다”(8번 트랙 ‘우리’)라는 담담한 선언을 내어놓으며 끝이 난다. 마스터링을 끝낸 최종 음원을 처음부터 찬찬히 듣던 나는 불현듯 이 앨범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는 ‘나’라는 개인이 점차 ‘우리’를 발견해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머리에서 밝혔듯 그건 한창 작업에 빠져있을 때는 도통 보이지 않았든—또는 볼 수 없었던—친숙하지만 처음 보는 그림이자 의미였다.
[우리]를 장르로 특정하자면 아마 어쿠스틱 팝 정도에 위치하게 될 것이다. 더없이 듣기 좋은 (그리고 썩 잘 만들어진) 대중 음반이지만, 실제 작업에 참여한 사람이 음악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상찬을 늘어놓는 건 보기에도 그리 좋지 않을 테고, 무엇보다 그다지 신빙성 있게 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이 앨범 작업에 참여하게 된 간략한 경위와 앨범 제목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부족하게나마 몇 자 적어보았다. 밴드와 앨범에 대한 소개로 적절할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누가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게 내 개인적인 바람이다.
앨범 아티스트로서 첫 발걸음을 내딛고, 그와 동시에 처음으로 ‘우리’라는 개념을 획득한 이 밴드가 계속 성장해 앞으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그리고 거기서 조금 더 욕심을 부리자면, 그 과정 속에서도 ‘나’를 잃지 않기를 조용히 바라본다.
2019년 12월
이성혁 (크랜필드, 탐구생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