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 전기뱀장어 EP [물의 빛]
우리의 마음속, 물의 빛을 발견하는 시간
2011년 첫 EP를 발매하고, 이듬해인 2012년에 EP [최신유행]과 정규 1집 [최고의 연애]를 발표하면서 뜨거운 관심 속에 첫발을 내디뎠던 밴드 전기뱀장어가 어느덧 9년 차 밴드가 되어 새로운 EP [물의 빛]을 발매한다.
그동안의 발매와 공연 활동을 살펴보자면 전기뱀장어는 꽤 부지런하고 꾸준하게 활동해왔다. 2014년 EP [너의 의미], 2016년 [Fluke]를 발매했고 중간중간 싱글도 발표했다. 이번 앨범은 2집 발매 이후 3년 만에 선보이는 새 앨범이니 전기뱀장어의 호흡으로는 꽤 오랜만에 앨범이 나온 셈이다. 그동안 밴드는 어떤 일들을 겪어왔고, 이번 앨범은 전기뱀장어의 음악 항로에 어떤 의미를 갖는 앨범일까.
기존에 공개한 싱글 넷에 새롭게 공개하는 신곡 셋을 더한 이번 앨범의 제목은 ‘물의 빛’이다. 멤버의 말을 빌려와 보자면 ‘특정한 시간에, 특정한 장소에서, 특정한 시선 속에서 물의 빛을 발견한 일곱 개의 사건’이다. ‘가장 멋진 파도’, ‘수영장’, ‘요트’에는 물의 심상이 직접적으로 드러나고, ‘오르별’과 ‘연남의 불빛’은 빛이 소재로 등장한다. '택시는 답답해'와 ‘푸딩' 역시 반짝이며 기억될 삶의 한순간을 얘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궤를 같이한다. 전기뱀장어의 새 EP에는 ‘물의 빛’이라는 주제에 각자의 색채를 투영하는 일곱 개의 노래가 리드미컬하게 담겨있다.
이번 앨범의 눈에 띄는 특징 중 하나는 밴드의 넓어진 음악적 스펙트럼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2집 앨범 [Fluke]에서 완성된 인디록의 정점을 보여주었다면 이번 앨범은 지난 3년간 흡수한 다양한 음악적 자양분을 굳이 절제하지 않고 자유롭게 표현한 느낌이다. 말끔하게 간추려낸 트랙 리스트라기보다는 자유분방하게 뻗어 나가는 일곱 개의 노래라는 이야기다.
웅장하게 밀려와 부서지는 파도 소리를 목소리와 악기로 표현한 록 트랙 ‘가장 멋진 파도’에는 품이 넓은 감동이 있고, 햇살이 부서지는 바다로 모험하듯 떠나는 ‘요트’는 낭만적이다. 전기뱀장어 특유의 경쾌한 인디록에 90년대 복고풍 팝을 얹은 듯한 ‘택시는 답답해’와 겹겹이 쌓은 악기들이 구축하는 사운드 스케이프가 인상적인 ‘푸딩’은 전기뱀장어의 지속과 변화를 함께 관찰할 수 있는 곡이다. 밴드의 가장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는 트랙은 역시 신스팝 트랙 ‘연남의 불빛’과 왈츠 리듬의 발라드곡 ‘오르별’이 아닐까 싶다. 정답고 나긋나긋한 포크록 트랙 ‘수영장’까지 듣고 나면 멤버들의 다양한 음악적 관심이 전기뱀장어라는 음악 세계로 연착륙하고 수렴되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전기뱀장어 멤버들이 그랬듯, 누구나 물에 관한 기억이 있고 오래 기억되는 순간을 만나기 마련일 것이다. 수영장의 쨍한 파란색의 타일일 수도 있고, 노을 진 바다의 붉은 여운일 수도, 연인과 손을 잡고 걸었던 녹색의 호수일 수도 있다. 전기뱀장어는 가사와 음악적 표현을 통해 시각적 이미지를 끌어내는데 굉장히 능한데, 이번 앨범 수록곡을 듣고 있자면 마치 곡이 쓰인 그 순간의 ‘물의 빛’을 직접 관찰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일상적인 언어로 노래하는 음악가는 많지만 일상의 작은 틈을 잘 들여다보고 평범한 삶에서 때때로 만나는 마법 같은 순간을 노래로 완성하는 이가 많은 건 아니다.
전기뱀장어의 매력 중 하나가 바로 그런 보편성에 대한 탐구가 아닐까 싶다. 전기뱀장어는 ‘남’에게나 있을 법한 거창한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나’에게 의미 있는 아기자기하고 소중한 경험을 노래한다. 일상의 특별한 순간을 놓치지 않고 또박또박 적어서 완성한 음악이다. 모두의 마음속에 있는 ‘물의 빛’을 발견하는 앨범이다.
여하튼 3년 만에 [물의 빛]으로 돌아온 전기뱀장어다. 3년이라는 공백이 길었다고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멤버들이 마냥 손 놓고 있었던 건 아닌 것 같다. 더 성실하고 진지하게 음악을 대하는, 하지만 여전히 귀엽고 친절한 그들을 환영하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