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SH [#1]
“록은 살해당했다.” 2014년 KISS의 진 시몬스는 이렇게 선언했다. The Doors를 비롯해 수많은 뮤지션이 같은 말을 반복했지만 저 발언이 좀 더 의미심장하게 들리는 이유는 이미 우리가 그렇게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 록은 죽었다. 적어도 ‘팔리는 음악’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그렇다. 굳이 대한민국의 상황을 한탄할 필요가 없다. 이건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록페스티벌 헤드라이너들 외에는 대개 취미활동의 영역에서 밴드 생활을 영위할 뿐이다.
이런 현실 속에 밴드 ‘HASH’가 정규 앨범을 발표했다. 2014년 활동을 시작한 이후 4년 만의 앨범으로, 사실 그들의 2015년 싱글에 의거하여 이들을 ‘록 밴드’로 소개할 생각이었다. 묵직하고 강렬하게 내달리는 드럼과 베이스, 드라이브감 넘치는 기타 사운드에 화려한 솔로까지, 그야말로 록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음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앨범 [#1]에서 들을 수 있는 HASH의 음악은 이전과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드럼과 베이스, 그리고 일렉트릭 기타로 만들어내는 록 사운드의 근간은 변하지 않았다. 변화의 주역은 바로 보컬이다. 이전에도 보컬 허균은 R&B 스타일을 근간으로 한 보컬을 들려줬다. 록 사운드와 R&B 보컬의 결합이 바로 HASH를 규정짓는 특질이었다. 다만 과거의 결합이 물리적인 느낌이 강했다면, 이번 앨범에서야 비로소 화학적 결합이 이뤄진 듯하다.
현대적 의미의 R&B와 헤비메틀의 결합을 최초로 시도했다고 평가받는 밴드가 ‘Living Colour’이다. [#1]의 전반적인 소리는 바로 그들을 연상시킨다. “NOW”, “Anybody Else?”나 “식어버린 도시에” 같은 노래에서의 연주는 헤비메틀을 연상시킬 정도로 강렬하고, 보컬은 R&B 스타일리스트들을 소환할 정도로 매끄럽다. 좀 더 헤비한 버전의 Maroon 5를 연상시키는 “Trigger”도 흥미롭다. 치밀하게 정돈한 테이크와 연주들은 듣는 재미를 더해주는데, “사랑이란 홀로 남겨지고 마는 건 아닌데”에서는 Toto를 위시한 팝-록 밴드들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앨범 첫 곡으로 배치한 “Shadow” 같은 마이너 감성 발라드는 HASH가 자신 있어 하는 스타일인데, “Stay Me Out of You”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이와 대비되는 “GO!”와 “Be Alright”에서는 ELLEGARDEN 스타일의 청량감을 느낄 수 있다. 마지막으로 “2-1=0”에 이어지는 “없는 밤”에서는 대곡 지향의 면모도 엿볼 수 있다.
“록은 살해당했다.” 진 시몬스의 이 말에 대해 뭐라고 답할 것인가? 4년의 고심 끝에 HASH는 [#1]라는 답을 내놓았다. 답에 대한 해석은 제각각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아직 살아있다. 그리고 새로운 삶을 찾는 중이다”라고 들린다. 당신에게는 어떻게 들리는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