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과 겨울을 연결 짓는 '정연승'의 두번째 프로젝트 [회자정리 거자필반]
"홀로 걸으며 옷이 두꺼워질 즈음, 곁에 있던 사람이 바뀌고... 사람이 바뀐다." - '정연승'
지난겨울 [Wintessay] 이후 가을의 끝에 찾아온 '정연승'의 [회자정리 거자필반]은 짧은 가을의 여운만큼이나 길고 오랫동안 바스락대는 마음을 뒤척이게 한다. 모든 만남과, 모든 헤어짐. 모든 상념과, 모든 한숨들. 모든 일부가 한 장의 앨범에 오롯이 담겼다. 이 일부는 곳곳에 스며들어 회상으로부터의 회귀와 그리움으로부터 시작된 만남으로 인해 회한과 닮은 맨얼굴을 마주하게 한다. 실제의 것들이 무너지면 그 실체마저 모호해지고 도저히 실감할 수는 없으나 절감할 수 있는 보통날들. 상실감으로 인한 결핍으로 채워지곤 하는 기다림의 어떤 의미에 대해. 무너지고 또 무뎌지는 아픈 날들을 보낸 청춘의 열망과 사그러드는 열정 그리고 꿈과 희망의 의미에 대해. 어느 날 문득 마주했을지도 모를 꼭 움켜쥐고 있는 시간의 틈과 마지막 끝의 시작. 그 여섯 갈래의 마음으로 자박자박 걸어 들어간다.
1. "프른밤"
뉴에이지와 재즈가 부드럽게 어우러진 발라드. 청아한 피아노 연주는 어떠한 시간에 머물던 상념의 회귀를, 조심스럽고 간간이 연주되는 베이스와 드럼은 마치 한숨을 뱉어내는 것만 같다. 모호해서 확연한 마침내 멀어지려는 순간의 여흔이 맴돈다.
2." 낯선"
후드득 눈물이 떨쳐지듯 시작되는 피아노. 묵직한 바이올린과 첼로가 어우러진 연주와 물기를 가득 삼키고 노래하는 '오지은'의 목소리는 목구멍 가득 차오른 뜨거운 감정들이 머금어졌다. 마침내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오케스트라 연주와 함께 쏟아 내버릴 가뿐 아픔. 슬쩍 마음결을 시리게 스치는 앰비언트. 마지막 시간을 꼭 움켜쥔 채 끝의 시작을 맺는다.
3. "세월네월"
어디에도 흐르지 못한 채 어딘가를 내내 맴돌고 있는 체념과도 같은 피아노의 감정선에 한국적 민요의 정서가 더해져 서정성이 감도는 선율. 터덜터덜 걷는 느릿한 움직임의 단조로운 보컬. 낮게 흐르는 첼로음은 가끔 덮쳐오는 막막함 같은 묘한 긴장감을 준다. 표면적으로 담담히 살아가는 암담함, 누구나 느꼈을 답답함. 스스로를 향한 지연된 분노가 간혹 재채기처럼 터져 나오고야 만다.
4. "내 나이 愛"
'장윤주'의 솔직하고 진심 어린 목소리가 클래식 기타의 부드러운 선율과 어우러져 마음을 부드럽게 감싸고 어루만져준다. 번지듯 퍼지는 그때 그 시간들을 관통한 지금을 인식하는 순간의 두려움과 바스락거리는 마음이 못내 아쉬워지는 늦은 밤. 사랑으로 사람으로 황폐할지언정 텅 빈 마음보다야 낫지 않을까.
5. "서른... 겨울로 가는 길"
앰비언트와 첼로음으로 하나의 계절에 끝이 시작된다. 멀고도 가깝게 연주되는 바이올린은 마치 주변인 같다. 고요해서 더 큰 울림이 있는 피아노음. 문득 멈춰 서게 되는 계절의 길목에서 뒤돌아 갈수도 앞으로 나아 갈수도 없는 어딘가에 조금씩 떼어준 나의 일부의 조각들이 흩어져 스스로 충분하지 못한 존재감이 된 것만 같은 정제된 시간. 봄이 오고야 말거라는 막연한 믿음 말고는 달리 위안이나 용기를 구할 수 없이 망설임에 연민을 안고 추운 계절로 들어선다.
6. "인연"
단조롭고 조심스럽게 걸음을 맞추듯 연주되는 피아노. 못다 뱉은 한숨의 여백을 채우는 첼로가 피천득 시인의 "인연" 한 부분을 가사로 해 연주된다. 간결해서 더 아름다운 선율과 한편의 시가 음악에 녹아들어 담담하고 짙은 여운으로 마음을 울린다. 단 한 사람으로부터의 그리움 가득 머금고 헤어짐 이후의 만남을 기다림으로 하루와 생을 살아낸다.
'정연승'. 그의 음악을 몇 년간 들어오며 가끔은 선연하고 스산하게 때론 부드럽고 따스하게 위안을 얻어왔다. 홀로 삼켜낸 울음과 같은 울림이 있는 그만의 클래식은 고요하게 스며들어 존재한다는 증거를 위한 표현의 난해함을 배제한 간결함으로, 부드럽고 감각적이게 잊혀져가고 무뎌져가는 감정들을 보다 가깝게 승화시킨다. 대중적 정서가 솔솔 묻어나는 [회자정리 거자필반]에 담긴 그의 연주가 더 다정하게 느껴지는건 존재의 허상이 실체로 다가와 의식과 맞닿은 그 순간의 진솔한 진짜 감정을 음악에 불어넣어서가 아닐까 싶다. 담담히 느린 걸음의 낮은 시선과 조금 더 내밀하고 가까운 그의 "숨"이 편안하고 솔직히 여기 담겨있다. 여섯 갈래의 마음에는 자박자박 걷는 발걸음과 같이 결코 앞서지도 뒤로 쳐지지 않은 채 묵묵히 함께 걷는 감정선을 이끌어내는 선율이 있다.
이 선율들은 그대로 감정의 맥을 짚어 가다 함께 숨을 뱉어내며 마침내 한 곳에 이른다. 어느 때의 어느 나로서, 사랑은 어쩌면 한 사람으로부터 귀결이 되고 상념과 한숨들은 언제나 미결된 상태로 지속된다. 지금이 아니라 꿈꿀 수 있는 시간들과 함께 하기 좋은, 걸어온 날들로부터 걸어갈 모든 날까지 함께 할 음악이 가만히 곁에서 당신의 걸음과 함께 한다. 나라고 "안녕" 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을까. 나직하게 뱉어내고야 마는 짙은 허전함과 허기와 같은 그리움의 여백을 향한 감흥을 지그시 얹고 다시 한걸음 떼어본다.
음악 이야기_ 최혜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