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그리워하고 있는 시간 속에서 당신은 여전히 그 누구보다 빛나고 행복할 것이다. 그러나 시간은 유한하고 우리는 계속 시간을 잃어가며 산다. 우리는 모두 안다. 그 잃어버린 시간으로 결코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오늘은 어제가 되고 내일은 오늘이 된다. 많은 기억이 망각의 저편으로 사라지고 있지만 그러나, 여전히, 우리 마음 한편에 남아 결코 사라지지 않는 시간들이 있다. 그 특별한 시간의 기억은 계속 살아남아 우리와 현재를 함께 한다.
‘라피나 앤 캐비’의 첫 앨범은 마음 한편에서 영원히 살고 있는 잃어버린 시간을 노래한다. 음악을 통해 우리가 잃어버린 그 시간을 다시 불러들이고 그곳에 머무는 시도를 하였다. 상실된 시간, 엄마는 상실의 상징이다. ‘라피나 앤 캐비’는 상실된 엄마의 시간을 바라보고 있다. 타이틀 ‘안개꽃’은 ‘라피나’가 엄마의20대 시절로 돌아가 자기 자신을 투영하며 만든 노래다. 엄마의 모습을 볼 때마다 자신과 너무나 똑같았을 그녀의20대를 상상한다.
사랑은 늘 아름다운 것 같다. 그러나 사랑은 설레는 만큼 두렵기도 한 것이다. 항상 큰 어른인 것만 같았던 엄마 또한 세상이 설레고 두려웠을까, 나와 같이 불안한 젊음을 살았을까, 한때 아름다운20대 여성이었을 엄마는 세상과 부딪치는 동안 그녀는 그 모든 순간을 어떻게 견뎌냈을까, 하고 질문한다. 

이런 질문에서 시작된 앨범은 ‘라피나’ 의 엄마가 잃어버린 시간을 이제는 딸인 ‘라피나’가 음악을 통하여 다시 한번 살아보고자 하는, 불가능하지만 절실한 소망에서 시작되었다. 음악을 통해 어머니의 잃어버린 시간은 그녀와 같은 나이였던 ‘라피나’와'캐비'의 현재가 된다. 

‘안개꽃’ 타이틀곡은20대의 어머니를 마주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아름답지만 쉽게 흩날리는 불안한20대를 표현하고 있다. 이 앨범에 수록곡인, ‘You Never Know’, ‘고래와 나’ 등은 역시 엄마가 잃어버린 시간을 노래한다. 아무도 알아주지 못했던 내면의 슬픔, 풋풋한 사랑과 덜 여문 꿈, 미숙했지만 그만큼 아름다웠던20대 엄마의 그 시간을 이제 딸과 아들인 우리들이 받아안고 다시 그 여정을 시작한다. ‘라피나 앤 캐비’의 첫 앨범은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그 시간을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 바꾸고자 시도하였다. 물론, 이 시도는 불가능으로 끝나겠지만 그렇기에 더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느껴지길 소망한다.
우리의 노래는 차갑지만서도 따뜻하고, 허무하지만서도 열정적이다. 마치 꿈을 꾸는 듯한 이 앨범의 음악은, 80년대 신스팝 음악의 주 사운드였던Roland 신디사이저가 과거의 향수를 더해주고 있다. 동시에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리며 노래한다. “우리의 지금은 영원하지 않아. 우리의 시간은 과거로 흘러가고 있고, 우리의 엄마 아빠도 그러한 것처럼 우리 또한 계속 무언가를 잃어가며 현재에 머물러 있다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