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ener (그리너) [분실물 2020]
분실물, 2020
상실과 사랑의 기쁨
내가 태어나면서부터 세상은 모든 것을 빼앗아갔다. 아끼던 물건은 망가지고 사랑했던 사람들은 곁을 떠난다. 서로가 좋아했던 영화, 함께 듣던 노래, 당신의 목소리로 건네어 듣던 시. 그 장면들이 더는 우리 것이 아니게 되었을 때의 마음을 여전히 기억한다. 그러나 믿기지 않게도 상실은 쉽게 반복되었다. 그래서 나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기로 했다.
“어디 하나 의지할 곳 없겠지만 내가 열심히 넘어지지 않을 테니 당신은 그저 내 허리를 감싸 주오”
가사를 보며 그들이 어떤 것에 가치를 두는지 알게 되었다. 당신과 나. 그러니까, 세계 자체였다. 어째서 그들의 세상은 이토록 안온한 말이 흐를까. 그들이 나보다 편한 삶을 살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곡을 들으면 오히려 그들은 한 번 넘어진 적 있으며, 오랫동안 문지른 기억을 가진 사람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나와 달리 삶의 형태를 부정하지 않고 “언젠가 흘러가다 보면 만날” 존재들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한 왜곡되지 않은 시선이 드러난 곡은 [취한 날]이다.
“돌아오지 않을 어떤 날들과, 흠뻑 젖은 내 젊음을 본다”
청춘은 지나고 나서야 청춘이라 호명되며 인식된다. 다양한 감정과 시간이 한데 묶여 표현되는 것 같아 쉽게 청춘이라는 말을 쓰고 싶지 않지만 [취한 날]은 청춘의 한 부분을 그리고 있다. 취함은 젊은 날에 가진 엷은 열망이다. 우리는 투명하고 작은 꿈을 꿨고 사랑에 기대기도 하며 여기까지 걸었다. 각자가 가진 열망에 취해 두려워하지 않았기에 열병처럼 남을 날을 흔쾌히 지난다. 이상과는 다른 매일에 부딪힐 때마다 미끄러지는 날들. 이곡은 꽤 쓸쓸하게 들리지만 마냥 그렇지도 않다. 그 때를, 청춘을, 가엾게 여기면서도 그 날이 사랑스럽다는 듯이 그들은 노래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들의 단어는 곧 여명처럼 느리게 스며든다. “서울의 밤이 환히 보이는 곳/당신이 가장 아름다운 그곳/널 품에 안고 난간 그 아래를 바라보면/그 어떤 추락도 난 두렵지 않을 테요” [남산]은 유토피아적 공간을 그리고 있다. 우리가 두고 올라온 외로움은 존재하지 않고 추락도 두렵지 않은 곳. 그것은 죽음을 뜻하고 있지만 “강물에 비친 노을은 너를 그리고 너는 나에게 구름처럼 흐르”기 때문에 우리는 비가시적 죽음까지 허락할 수 있게 된다. 사랑은 우주 속에서 한없이 가난한 나의 존재를 잠시나마 유한한 빛처럼 느끼게 하니까.
“하늘을 바라보고 누워 깊은숨을 쉬어야 해 흘러가는 파도에 우릴 맡겨야 해 멀리서 보는 우리 눈물도 그저 파랗게 새파랗게 보일 거야 아무 일 없는 듯 평온한 이 바다처럼 그대로 흘러가”
그의 마음이 가장 감각적으로 표현된 곡, [유영]은 비가 내리는 이미지로 시작해 바다까지 확장된다. 비는 내려서 강으로 흐르고 바다가 되어 다시 비로 내린다. 물의 순환은 끝없이 반복된다. 상실도 그렇다. 어쩌면 우리는 죽을 때까지 상실을 겪으며 살아갈지도 모른다. 영원한 상실을 이겨낼 수는 없다. 늘 처음인 듯 미숙하게 굴며 충분히 슬퍼할 것이다. 울어도 된다고 노래하는 사람 덕에 이제야 나는 버틸 수 있을 것만 같다. 나는 많은 것을 잃었구나,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상실이 사랑으로 내린 후에 언젠가 나에게 기쁨을 주었던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더는 곁에 있을 수 없는 것에 대한 예의는 잊지 않는 것이라 누군가 말했다. 모든 걸 잊고 잃는 세계에서 영원함을 위해 나아가는 음악을 건네어 받았으니 너와 나는 이제 오랫동안 기억될 젊은 날의 분실물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길 진실로 바란다.
-김세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