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요 역사 속 선구적 천재 여성 싱어송라이터,
故 장덕의 30주기를 맞아 세대를 건넌 후배 뮤지션들이 재해석한
그녀의 아름다운 노래 시리즈 그 두 번째, 모트의 [점점 더 가까워져요]&[소녀와 가로등]
다가오는 2021년 2월 4일은 故 장덕의 30주기가 되는 날이다. 돌이켜보면 1990년 2월 4일 그녀가 향년 28세로 우리 곁을 급하게 떠나버렸다는 소식은 수많은 가요 팬들과 음악 관계자들에게 큰 충격이었다. 단순히 한 명의 뮤지션의 아까운 죽음을 넘어, 훌륭한 재능을 겸비한 당대 최고의 여성 싱어송라이터이자 엔터테이너를 잃었다는 아쉬움과 슬픔은 클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가요계는 당시로서는 유례가 드물었던 동료 아티스트들과 연예인들이 참여한 추모앨범 [예정된 시간을 위하여]를 발표하며 그녀를 추모했으며, 이후 지난 30년간 여러 뮤지션들이 그녀의 음악을 커버하거나 그녀에 대한 음악적 존경의 표시를 이어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장덕의 음악 여정
돌이켜보면 장덕은 대중 앞에서 음악 활동을 처음 선보였던 시점부터 사망 전까지 꾸준히 ‘음악적 천재성’에 대한 찬사를 받아왔던 뮤지션이다. 그녀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스스로 작곡을 할 능력을 갖추었고, 14살 때 오빠 장현과 함께 혼성 듀엣 ‘드레곤 레츠’로서 미 8군 무대에 서면서 그녀의 프로 뮤지션으로서의 역사는 처음 시작되었다. 이어서 1975년 5월 이들은 TBC TV 쇼 프로그램에 출연해 ‘현이와 덕이’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의 창작곡 ‘꼬마 인형’을 노래하면서 대중에게 처음 주목을 받았으며, 남매의 곱상한 외모와 음악 실력이 화제를 모으면서 남매는 70년대 청춘 영화의 단골 배우로 픽업되며 어린 나이에 맘껏 연예인으로서의 재능을 표출했다.
그러나 장덕에 대해 대중을 넘어 음악계가 주목했던 부분은 바로 그녀의 작곡가로서의 능력이었다. 1977년 제1회 MBC 서울가요제에 출전한 가수 진미령이 노래한 [소녀와 가로등]으로 보컬리스트를 넘어 좋은 송라이터로서 가요계의 주목을 받았고, 이후 장현의 [더욱 큰 사랑](1978), 박경희의 [사랑이었네](1979), 최병걸의 [사랑은 떠나도](1980) 등 여러 주류 가요 뮤지션들의 가요제 출전곡들을 제공하며 프로 작곡가로서 빠르게 인정받았다. 1979년부터 오빠의 독립 활동으로 그녀 역시 솔로 활동을 시작하며 2장의 앨범을 공개했으며, 1980년대 초반에는 잠시 한국 가요계를 떠나 어머니가 있는 미국 내쉬빌로 옮겨갔지만 그 곳에서 음악 활동을 하고, 음악 공부도 하면서 내쉬빌 작곡가 협회에도 등록해 현지 컨트리 가수에게도 곡을 줄 만큼 그녀의 작곡 능력은 더욱 성장했다.
이렇게 꾸준히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작곡가로서의 재능을 활발히 펼쳐왔지만, 그 능력이 완벽하게 만개해 한국 대중음악 역사 속에 각인된 것은 1983년 귀국 후의 솔로 활동일 것이다. 컴백곡 [날 찾지 말아요]는 오랜 공백에도 대중에게 그녀의 컴백을 각인시켰고, 1984년 자매 듀오 국보자매에게 [백치미], [사랑하고 있나봐요] 등을 제공하며 LP 한 면을 자신의 곡으로 채웠다. 1985년 다시 현이와 덕이 듀오 앨범을 통해 히트시킨 [너나 좋아해 나너 좋아해]를 통해 대중적 인기도 어느 정도 회복한 후, 그녀는 이은하의 명곡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1986)이 수록된 앨범의 대부분을 작곡하면서 단순히 작곡자를 넘어 한 명의 프로듀서로서의 역량까지 보여주기 시작했다. 놀라운 것은 이 음반 작업과 동시에 그녀의 최고의 히트작이라고 할 수 있는, 가요 차트 1위곡 [님 떠난 후]가 담긴 앨범 [님 떠난 후/이팔 청춘의 고백](1986)이 준비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이 곡이 각종 가요차트 정상을 차지하면서 드디어 그녀는 대중적 인기의 정점에 올라섰고, 이후 [이별인줄 알았어요](1987), [얘얘](1988), [예정된 시간을 위해](1989) 등의 히트곡들이 꾸준히 대중에게 사랑을 받았다. 서두에서 얘기했던 대로 만약 그녀가 1990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지 않고 더 오래 우리 곁에 머물렀더라면 어쩌면 우리는 지금보다 더 많은, 좋은 그녀의 신곡들을 만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물론 그녀가 생전에 발표했던 노래들만으로도 이미 그녀는 가요계에 의미 있는 족적을 남겨놓았지만.......
장덕이 작곡한 첫 대형 히트곡 [소녀와 가로등], 그리고 숨은 명곡 [점점 더 가까워져요]
지금 세대에게는 낯설 수도 있겠지만 1970년대에 청춘을 보냈던 세대에게는 [님 떠난 후]보다 더 친숙했던 그녀의 작품은 [소녀와 가로등]이었다. 앞에서 서술한 대로, 이 곡은 진미령이 가요제에 이 곡을 받아 출전해서 대중에게 첫 선을 보인 곡이다. 발표 당시인 1977년 안양예고에 입학한 장덕은 가수 송창식의 권유로 당시 신인가수였던 진미령에게 자신이 습작해 놓은 이 곡을 제공하게 되었다. 그러나 곡 자체는 그녀가 중학교 2학년 때 이미 완성해 놓았던 곡으로, 부모의 이혼으로 가족이 흩어져 살 때 엄마 집에 잠시 머물러 있던 그녀가 당시 창 밖의 가로등을 바라보며 느낀 순간적인 감정을 가사로 옮긴 노래였다고 한다.
이 곡은 당시 가요제에서 수상곡 리스트에 들지는 못했지만, 당시 이 무대를 봤던 이들에게는 노래를 부르는 진미령보다 작곡가로서 (당시 가요제 규정에 따라서) 함께 무대에 나와 오케스트라를 지휘해야 했던 그 모습이 더 강한 인상으로 남았다고 전한다. 결국 이 곡은 화제를 모으며 가요제 이후 진미령의 버전, 그리고 작곡자인 그녀가 부른 버전이 모두 대중에게 사랑받으며 두 사람의 대표곡으로 각인되었다.
한편, 그녀의 1988년 솔로작 [얘얘-골든 앨범 vol.2]에 수록된 [점점 더 가까워져요]는 대중에게는 조금 낯선 곡이긴 하지만 그녀의 숨은 명곡이라고 할 수 있는 발라드 트랙이다. 편안하고 로맨틱한 장조 팝 발라드 트랙인 이 곡은 해당 앨범에서 타이틀 트랙으로 방송 등에서 홍보된 적은 없었다. 하지만 가사가 담고 있는 사랑에 설레는 여성의 감정 표현, 그리고 이은하의 앨범에서 이미 선보였던 세련된 편곡과 가벼운 신시사이저-건반 활용은 이미 30년이 더 지난 시점인 지금 들어도 그리 촌스럽게 느껴지지 않고 정감있게 다가온다.
새 세대가 주목하는 개성만점 싱어송라이터 모트, 그녀가 재해석한 두 노래의 모습은?
장덕이 활동하던 시절에 비하면 이제 대중음악계에서 싱어송라이터 여성 뮤지션들의 활동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활발해졌고, 인디 씬에서도 장르 불문하고 꾸준히 재능 있는 신인들이 새로 등장하고 있다. 그 중 새롭게 1020세대들에게 활발한 지지를 받고 있는 싱어송라이터 모트는 어쿠스틱과 전자음의 세계를 자유자재로 오가고 팝과 록, R&B의 경계를 허무는 세련된 멜로디와 리듬 감각, 그리고 젊음의 고민과 감성을 자극하는 친밀한 노랫말로 대중과 평단의 관심을 동시에 받아왔다. 웹 드라마 ‘에이틴’의 OST였던 [도망가지마](2018), 그녀의 음악적 재능을 본격적으로 담은 정규 1집 [사이](2018), 이후 발표된 [Room-ie](2019), [시차](2020), 최근작 [비행기모드](2020)까지 그녀의 독특하고 사랑스러운 음악 세계는 계속 발전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번에 그녀가 장덕의 곡들을 커버한다고 했을 때 과연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매우 궁금했다. 흥미롭게도 그녀는 두 곡을 함께 발표하는 선택을 했고, 앞서 설명한 장덕의 두 곡 가운데 그래도 과거에 많이 알려진 [소녀와 가로등]보다 오히려 [점점 더 가까워져요]를 타이틀로 삼아 싱글을 공개했다. 존경하는 선배의 곡을 커버하지만, 그 속에서도 뮤지션으로서 모트의 음악적 지향을 고수하며 단순한 커버 버전이 아닌 모트의 곡으로 대중에게 닿기를 바라는 의도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일단 [점점 더 가까워져요]는 80년대식 팝 발라드였던 원곡이 모트의 재해석을 통해 보다 밴드 포맷의 포크 록/모던 록 트랙으로 변모했다. 특히 중반부에 마치 관악기 음색의 솔로 연주 파트와 90년대 브릿팝 트랙을 듣는 것 같은 클라이맥스의 기타 연주가 매력 있게 다가온다. 모트의 그간의 트랙들과 비교하더라도 꽤 록적인 필이 담긴 트랙이라 그녀 음악의 팔레트가 점점 넓어짐을 확인하게 된다. 한편, [소녀와 가로등]에서는 원곡의 멜로디의 애상적인 정서를 그대로 계승하지만 그 뒤에 깔리는 비트와 리듬은 7080시대가 아닌 21세기의 것으로 맞추는데 지향을 둔다. 피아노와 베이스 터치의 재지하고 변칙적인 음의 전개, 곡의 애상을 블루지하게 끌어올리는 기타 솔로 위에서 모트는 자신의 목소리로 장덕이 그 시대에 느꼈던 외로움과 슬픔을 지금 세대의 감정으로 세련되게 치환해낸다. 뒤에 깔리는 LP잡음의 빈티지함과 새 시대의 비트와의 ‘소리의 얽힘’도 원곡과 이 커버의 시대적 간극을 자연스럽게 무지개 다리처럼 연결한다.
지난 레인보우 노트의 [님 떠난 후]에 이어, 故 장덕의 30주기를 맞아 기획된 트리뷰트 싱글 시리즈의 두 번째로 발표되는 이번 모트의 커버 트랙들은 다시금 장덕이란 뮤지션이 남긴 음악들이 얼마나 시대를 초월해서 대중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멜로디인가를 다시금 확인시켜준다. 모트의 목소리로 ‘현재의 참신함으로 해석하는 장덕의 음악’의 광채가 얼마나 빛나는 것인지 직접 감상을 통해 확인해 보시길 바란다.
글/ 김성환(Music Journalist, [Locomotion] Editor)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