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해빈' 정규 2집 [나의 모습]
언젠가 어른들에게 수없이 물었습니다. 저마다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서요. 한데 돌아오는 대답은 늘상 모호하고 흐리터분하여 감히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중학교 시절, 내내 골똘히 공부하던 한 친구는 나중을 위해 오늘 코피를 쏟아야 한다고 일렀지만, 어쩐지 제게 그런 말은 별로 설득력이 없었습니다. 제 시선에는 어떤 성취감 혹은 목표 달성을 위한 공부가 아닌, 그저 주변의 환경에 떠밀려 맹목적으로 해야만 하는 숙제에 불과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때부터였을까요. 저는 줄곧 제가 왜 사는지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애당초 태어난 것부터 내 의지가 아닌데 어째서 꾸역꾸역 살아내야 하는 건지. 진정 나의 가치는 무엇이며, 앞으로 ‘나의 모습’은 어떻게 그려나가야 할 것인지. 과연 나는 어디에서 와서 또 어디로 가는지. 이런 시답잖은 생각들에 사로잡힐 때면 자연스레 우주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찾아보며 위안을 얻곤 했습니다. 세상에는 온갖 거짓과 왜곡이 난무하지만, 적어도 우주는 거짓말을 하지 않잖아요. 광대한 우주 속에서 우리는 먼지나 티끌보다 작고 하찮은 존재입니다. 그러나 ‘코스모스’에서 칼 세이건은 이렇게 말합니다. 인류야말로 우주가 내놓은 가장 눈부신 변환의 결과물이라고요.
다가올 미래를 대비해 현재를 열렬히 살아가는 삶도 큰 의미가 있겠지만, 당장 저에겐 어떤 돌파구가 절실했기에 지금 이 순간 행복해지는 것이 최우선이었습니다. 그렇담 행복은 무엇일까 하고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니 이미 무수한 행복들이 제 일상 속에 배어있더군요. 이를테면 커피를 마시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일기를 쓰는 것, 녹록잖은 현실에 한숨짓다가도 고개 돌리면 끝내 돌아갈 집과 품이 있다는 것. 또, 어릴 적 사촌들과 TV 앞에서 도란도란 명절을 쇠곤 했던 기억. 그 속에서 환히 빛을 내고 있는 ‘나의 모습’들. 저를 살아가게 하는 건 다름 아닌 이런 사소한 것들이겠더라고요. 하루하루 이만큼 행복을 모으고, 이만큼 추억을 쌓는 것이 목표가 된다면 정말로 더할 나위 없겠네요. 산다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매번 거창한 이유가 필요할까요.
이번 2집 [나의 모습]은 비교적 1집 [너의 마음] 때보다 더욱 진솔하고 자전적인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집이 ‘너의 마음’이었으니 2집은 반대로 ‘나의 마음’을 담아보면 어떨까 하고 가볍게 시작된 구상이 곧잘 진전되어, 마지막 단추를 끼우는 데까지 1년이 좀 넘게 걸렸습니다. 실은 저도 이렇게 빨리 새로운 음반으로 다시 인사드리게 될 줄은 몰랐는데요. 예기치 못했던 팬데믹의 장기화로 인해 남는 시간을 모두 음악에 전념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앨범을 만드는 동안에는 이 곡들을 여러분께 무사히 내놓는 것만이 하나의 삶의 목표이자 이유였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작업의 마무리 단계에서조차 집요하게 수정을 거듭했을 만큼 열과 성을 다했습니다. 비로소 이 글을 마침으로써 저는 제 목표 중 하나를 더 이룬 셈이겠네요. 과연 올해는 또 어떤 새로운 목표를 향해 나아가게 될는지.
저의 두 번째 노래집 [나의 모습]이 부디 ‘나의 모습’에서 그치지 않고, 곳곳에 ‘다양한 모습’으로 널리 전파되어 오래도록 여러분의 마음 한편 따뜻하게 스며들 수 있길 바랍니다. 한 곡 한 곡 정성으로 생명 같은 숨을 불어 넣어주신 모든 연주자와 엔지니어를 비롯하여, 무탈히 나올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힘써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21년 1월 성해빈 드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