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뱀장어 [탠저린]
미쉘 공드리의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서 조엘은 클레멘타인의 머리색을 따서 ‘탠저린’이라는 별명을 붙여준다. ‘클레멘타인’은 누구나 부르는 이름이지만 ‘탠저린’은 오직 조엘 만의 탠저린이다. 별명 부르는 걸 유난히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세상에는 모든 게 너무나도 많다. 무한대에 가까운 수의 사물과 장소와 시간들. 압도적으로 광활한 이 우주의 무의미 속에서 우리의 흔적은 어디에 묻어있을까. 내 눈길이 오래 머물렀던 어떤 것들은 항상 나만의 별명으로 부르고 싶다.
별명을 붙이고 싶은 두 개의 기억이 있다.
하나는 처음 외국으로 여행 갔던 기억이다.
낯설고 이국적인 풍경이지만 오래 밴 냄새 같은 자연스러운 예쁨이 있었고 날씨가 좋았기 때문에 금세 정이 들었다. 아시아 국가지만 식민지 풍이 꽤 남아있는 도시의 골목에는 창문을 열어둔 집이 많았고 듣기 좋은 음악이 둥근 자갈 위로 흘러내려 왔다.
또 다른 하나는 인천 월미도 부둣가를 걸었던 기억이다.
밤늦게 도착한 바다는 검고 어두웠다. 식당 간판과 술집 조명은 과하게 환하고 어지러웠으며, 보행자를 유혹하는 임무에 온 힘을 다하려는 듯 여기저기 흩어놓은 시시한 오락기기는 8비트 음악을 시끄럽게 연주하고 있었다. 평소라면 요란하고 천박하게 보였을 것들인데 그날 따라 모두 놀이동산의 퍼레이드처럼 즐겁게만 느껴졌다. 그날 부둣가를 걸으며 참 많이 웃었던 기억이 난다.
어린 시절 오락실에 갈 때면 주머니 속의 동전 몇 개가 그렇게 신이 났었다. [탠저린]은 동전 몇 개가 짤랑거리며 부딪히는 소리와 닮은 노래다. 타국의 골목에서, 월미도 부둣가에서 하나둘 별명을 붙여두었던 순간들이 반짝이는 동전처럼 머릿속에 남는다. 동전들은 부딪히고 반짝이고 사라진다.
이제 이 노래도 누군가의 주머니 속 하나의 동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언제든 꺼내 볼 수 있는 반짝이는 순간처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