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요 역사 속 선구적 천재 여성 싱어송라이터,
故 장덕의 31주기를 맞아 세대를 건넌 후배 뮤지션들이 재해석한
그녀의 아름다운 노래 시리즈 그 세 번째, 레인보우 노트의 [얘얘]
지난 2021년 2월 4일은 故 장덕의 31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돌이켜보면 1990년 2월 4일 그녀가 향년 28세로 우리 곁을 급하게 떠나버렸다는 소식은 수많은 가요 팬들과 음악 관계자들에게 큰 충격이었다. 개인적으로는 그녀의 사망 소식을 신문과 방송 뉴스를 통해 처음 접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지만 1980년대부터 그녀의 음악을 꾸준히 듣고 좋아했기에 꽤 충격을 받았다. 음악 감상에 깊이 빠져들기 시작하면서 한창 깊게 (나름의 팬심을 갖고) 좋아했던 가수를, 그것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져서 떠나 보내야 하는 경험을 제대로 해 본 것이 아마도 그녀가 처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가까운 친척이라도 되는 것처럼 안타까움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녀의 죽음은 단순히 한 명의 뮤지션의 아까운 죽음을 넘어, 가요계의 입장에선 훌륭한 재능을 겸비한 당대 최고의 여성 싱어송라이터이자 엔터테이너의 손실과도 같았다. 그랬기에 이 충격적 소식 앞에서 동료 아티스트들은 당시로서는 유례가 드물었던 추모앨범 [예정된 시간을 위하여]를 발표하며 그녀를 추모했으며, 이후 지난 30년간 여러 뮤지션들이 그녀의 음악을 커버하거나 그녀에 대한 음악적 존경의 표시를 이어왔던 것이다.
노래, 작곡 능력 외에도 다방면에서 재능을 드러냈던 한국의 선구적 아이돌, 장덕
이번 장덕 싱글 커버 시리즈의 앞선 글에서도 언급했듯,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장덕에게 붙이는 수식어는 대체로 ‘천재 가수’, ‘천재 싱어송라이터’같은 음악적 부분에 많이 집중된다. 물론 가수로서 음악에 대해서 먼저 평가받고 상찬을 받는다는 것은 중요하고 당연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녀는 10대 초반 오빠 장현과 듀오 현이와덕이로 데뷔 할 때부터 이미 귀엽고 활기찬 이미지를 통해 오빠와 함께 빠르게 ‘10대 청춘스타’의 대열에 들어섰다. 실제로1975년 5월 TBC TV 쇼 프로그램에 출연해 자신들의 창작곡 ‘꼬마 인형’을 노래하면서 두 사람은 한국 가요계 최연소 남매 듀엣으로 방송 데뷔를 하는 기록을 세웠다. 그 후 두 남매는 빠르게 10대와 어른 세대의 눈도장을 박으며 당시 젊은 세대들을 겨냥한 여러 청춘 영화들의 캐스팅 대상이 되었다. 특히 장덕의 경우 오빠가 출연했던 ‘선생님 안녕’(1977)에서 세 장면만 출연하는 단역으로 특별 줄연한 것이 계기가 되어 이후 그녀는 ‘내 마음 나도 몰라’(1977)에서 주연을 맡게 되었고, ‘우리들의 고교시대’(1979) 등에서도 출연하며 가수와 함께 청소년 배우로서의 이미지를 동시에 키워갔다. 10대로서 영화 배우로도, 그리고 어떤 경우 직접 OST까지도 담당했던 그녀의 그 시절 모습을 현재 가요계의 모습과 비교해본다면, 그녀는 이미 10대 시절 멀티 활동이 가능한 ‘아이돌’의 위상을 가진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그녀는 뮤지션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와중에도 여러 방면에서 자신의 재능을 표출했다. 어머니가 있는 미국에 이민 갔던 내쉬빌에서는 작곡가로서 공부도 했지만 동시에 한인 기독교 방송에서 ‘한국인의 샘터’라는 프로의 MC로 1년간 활동하기도 했다. 언제나 당차고 또랑또랑한 언변을 갖고 있었기에 방송 진행에도 잘 어울리는 능력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다시 솔로 가수로 복귀하기 위해 한국에 돌아온 이후에도 그녀는 생각 이상으로 방송 친화적인 모습으로 여러 쇼 프로그램들을 통해 대중에게 다가갔다. 쇼 무대에서도 본인이 노래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타 선후배 아티스트들과 함께 조인트 무대를 만들어 건반 연주를 하기도 했으며, 쇼 프로그램 속에서 진행되는 간단한 꽁트나 연기에도 주저함이 없었다. 한편, 1984년 10월에 개봉한 이미례 감독, 김진아, 남궁원 주연의 영화 ‘수렁에서 건진 내 딸’에서는 영화 배경음악을 직접 작곡했으며, 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한 달 전인 1990년 1월에 출연했던 KBS 신년 특집극 드라마 ‘구리반지’에도 출연하여 좋은 연기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녀는 훌륭한 뮤지션이었기도 했지만, 동시에 멋진 ‘멀티 엔터테이너’로도 평가받아야 마땅하다는 생각이 든다.
가요계 여가수의 전통적 통념을 바꾸는 데도 기여한 장덕
지금처럼 양성평등의 의식이 강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보면 70년대와 80년대 초반까지의 여성 가수들은 (물론 다른 전통적 업종에 비하면 규율에 덜 얽매일 수 있었지만) 여전히 사회가 그들에게 부여한 규범에 충실해야 했던 경우가 많았다. 무대에 올라 설 때는 거의 모두 드레스나 치마를 입어야 하는 게 당연했고, 차분하고 순종적인 이미지를 보여주는게 방송 진출에 유리했다. 그러나 1980년대로 넘어온 후 외모에 초점을 두기보다 가창력을 중심에 놓고, 보다 활발하고 지적인 여성상을 보여주는 여성 뮤지션들에게 서서히 기회가 오기 시작했다. 그런 대표 주자들로 이선희나 정수라 같은 가수들을 떠올릴 수 있겠는데, 두 사람보다 경력 상으로 훨씬 선배였던 장덕 역시 미국에서의 경험을 살려 한국에서도 모던하고 댄디한 느낌을 강조한 무대 패션과 이미지 연출로 트렌드를 선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앞서 언급한 두 여가수들과 장덕을 묶어 80년대 중반에는 ‘바지 삼총사’라는 별명이 연예계에서 자주 인용되었는데, 당시 젊은 여성들에게 대중의 시선을 의식하기보다 당당하고 진취적인 여성상의 모습을 보여주는 표본으로 장덕은 선봉에 선 존재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김완선 등 후배 여가수들이 댄스 뮤직을 본격적으로 끌어오던 시점에는 그녀 역시 함께 무대를 꾸밀 안무팀도 섭외하고, 자신도 안무 연습을 통해 댄스 팝의 유행이라는 변화에도 적응해 나갔다는 점에서 꾸준히 트렌드를 잘 맞춰가고 선도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타 작곡가와 협업한 88년 히트곡 [얘얘], 레인보우 노트를 통해 신스-펑키 팝으로 재탄생
1988년 9월에 발매 된 [얘얘-골든 앨범 vol.2]는 그녀의 커리어에선 살짝 변화가 모색된 작품이다. 그간 장덕의 솔로작들이 자작곡들로만 이뤄진 것에 반해, 이 앨범에서는 다른 작곡가들의 곡을 받거나 공동 작업한 곡이 4곡이나 수록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는 그녀와 가수 김범룡이 서로의 앨범에 곡을 제공하기로 한 이벤트 계획에 의거해 그녀가 [빈 가슴]이란 곡을 제공해 준 댓가로 받게 된 곡인 [내 말 좀 들어요]였고, 나머지 세 곡은 우리에게 [연안부두] 로 유명한 그룹 김트리오의 리더 김파가 곡을 쓰고 그녀가 작사한 타이틀곡 [얘얘], [서울의 밤거리], 그리고 [나의 꿈 이야기]였다. 이미 그녀는 과거에 김트리오 2집의 ‘사랑은 영원히’의 가사를 쓰면서 김파와 인연을 맺은 적이 있었고, 위 3곡은 그녀가 김파의 집에 가서 본 악보들을 직접 기타를 치며 노래하다가 맘에 들어서 이 곡들을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특히 타이틀 곡으로 사용된 [얘얘]는 기존 장덕의 작법과는 분명 다른 1950~60년대 미국의 고전 로큰롤 리듬과 드럼 비트의 정서가 곡에 흐르고 있고, 가사 역시 매우 밝은 정서가 담긴 트랙이다. 항상 자신이 만든 곡 위주로 노래했던 그녀에겐 색다른 도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원숙한 표현력으로 리듬을 타는 그녀의 보컬 능력은 이 곡에서도 빛이 난다. 서구 틴 팝(Teen Pop)적인 정서도 담긴 곡이기에 그녀의 사후에도 여러 여가수들이 이 곡을 무대에서 커버한 음원과 영상을 만날 수 있었다.
지난 번 첫 번째 프로젝트에서 [님 떠난 후]를 멋지게 커버했던 여성 시티 팝 듀오 레인보우 노트는 이번 [얘얘] 역시 자신들의 음악적 정체성에 기반하여 새로운 해석을 보여준다. 이번 커버 버전에서는 마치 두 사람이 애초에 만들어 낸 곡인 것처럼 자연스럽고 상큼한 신스 팝 프로그래밍, 그리고 원곡의 편곡에 담겼던 섬세한 배경 멜로디 라인까지도 자세하게 연주에 녹여낸 노력이 빛난다. 그리고 경쾌한 리듬감을 더하기 위해 80년대식 뉴 잭 스윙 타입의 펑키 리듬도 잘 믹스해냈다. 원곡보다는 BPM은 좀 더 빨라졌지만, 그래서 새로운 젊은 세대의 심장 박동과는 더 잘 어울릴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안슬희의 시원한 보컬도 원곡의 매력을 현대에 맞게 잘 해석해내고 있다.
총 3회에 걸쳐서 진행된 루비 레코드의 ‘故 장덕 31주기 커버 프로젝트’는 장덕에 대한 기억을 갖고 그녀를 추억하는 세대, 그리고 아직 그녀에 대해 잘 몰랐던 젊은 세대 모두에게 그녀의 음악의 매력과 가치를 깊게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탄생한 이 음원들을 통해 앞으로도 더 오랜 시간 동안 그녀의 음악이 대중과 함께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질 수 있고, 장덕의 음악에 대한 올바른 평가가 이뤄질 수 있길 기대한다.
글/ 김성환(Music Journalist, [Locomotion] Editor)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