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간/ 반- 응,
숨소리와 목소리를 연주할 수 있을까? 한희정의 이번 앨범을 여는 첫 곡은 살아있는 누구나 낼 수 있는 숨소리로 시작하여 “안녕하셔요” 인사하며 우리를 초대한다. 내 취향을 데이터로 취합하여 큐레이션 해주는 시대에, 누군가의 세계로 초대받는 경험은 얼마나 설레는 일인가. 첫 트랙에 등장하는 앨범 소개에 포함된 “소리를 매개로 주고받는 비가시적 현상”이라는 표현이 어려운 말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주고받는”이라는 표현에 주목해보자. 이 글을 쓰는 나와 이 글을 읽는 당신은 같은 세계에 초대받은 것이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 ‘In Silence’이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이 제목을 어떤 단어로 번역해야 가장 정확할까? 침묵, 고요, 정적, 적막. 아니, 이 모든 것. 관객석의 불은 모두 꺼지고 무대 위 한희정에게만 조명이 쏟아지는 상태로, 눈을 감은 채 숨을 쉬고 있는 그녀를 상상할 수 있다. 무려 4분 21초, 우리도 숨소리마저 낮추고 함께 몰입한다.
공; 空
지워내는 음악. 나는 ‘In Silence’를 그렇게 말하고 싶다. 듣고 있는 동안 내가 알고 있는 세계를 조용히 지우는 음악이라고. 연주가 후반으로 내달릴수록 당신이 음악을 듣고 있는 현실적 장소는 지워지면서 오로지 이 곡에 의해 상상된 공간만이 서서히 완성되어 간다. 이제 이 앨범을 들을 모든 준비가 된 것이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 곡의 색은 흰색이 분명하다.
간/ 間
‘재구성 Part 1’은 부드러운 오르내림으로 공간을 채워간다. 의미화되기 쉬운 가사 대신 악기 같은 목소리와 그 목소리에 여러 악기들의 연주들이 겹쳐지고 사라지길 반복한다. 이건 마치 회전목마의 조용한 원형의 운동과 부드러운 오르내림과 닮지 않았는지. 이 곡은 우리를 감싸며 부드럽고 둥근 공간을 만들어낸다. 소리에도 도형이 있구나, 그런 낯선 감각 속에서 원형의 운동은 ‘Part 2’에서 서서히 느려진다. 사람의 목소리가 빠져나간 자리를 악기들의 연주들이 풍성하게 채우면서 둥근 공간을 서서히 채워간다. 빈 유리컵 속, 차오르는 물처럼.
반- 反
이렇게 일곱 번째 트랙, ‘Another Inspiration’은 사방에서 기포가 팡팡 터지는 것만 같다. 2분 10초가 이런 밀도로 꽉 찰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이전 곡들의 리듬을 반복하면서도 특별히 고조된 기포들이 쉴 새 없이 터진다. 이쯤 되면 우리는 이 기포들을 만질 수 있게 된다. 손에 닿으면 팡하고 터져버리는 숱한 기포들. 우리는 물속에서 숨 쉬는 법을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일까.
응, 應
마침내 여덟 번째 트랙, ‘In Silence’의 흰색과 ‘재구성 Part 1과 2’에서 우리를 둥글게 감싸며 빙글빙글 돌며 만들어낸 원형의 건축 및 그 공간을 꽉 채운 연주들, ‘Another Inspiration’의 팡팡 터지던 기포까지, 자신이 지은 세계를 한희정이 그 어떤 머뭇거림도 없이 단숨에 벌컥벌컥 들이킬 때, 우린 초대받은 세계로 뚫고 들어가 정반대 방향으로 빠져나온다.
마지막 트랙, “당신의 반응에 반응하기”라는 12초짜리 목소리는 마치 이렇게 들린다. 이제 당신 차례에요. 나를 초대해 주세요. 우리에게는 응답해야 할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그녀는 지금 막 도달한 세계를 우리에게 완벽히 경험시켜줬으니까. 이 글은 그 응답 중 하나이다.
글/ 장은정 비평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