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반짝 빛나는 반석위의 집’
재즈 피아니스트 남메아리가 6년 만에 솔로 2집을 발표했다.
버클리 음대 출신이고 CJ튠업 아티스트로 선정됐던 남메아리는 2015년 1집 [Echo]를 발표하며 혜성처럼 등장했다. 한국인으로는 드물게 Thelonious Monk나 Bud Powell 등의 미국 흑인 재즈피아니스트 특유의 정서와 그루브를 지닌 연주자로 주목을 끌었다. 이후 일렉트릭 악기를 주로 연주하는 본인의 밴드 활동, 래퍼 슬릭과의 프로젝트, 드러머 서수진과의 공연 활동, 세션, 강의와 레슨 등으로 바쁘게 지내느라 오랜 기간 염두에 두었던 피아노솔로 2집 작업이 계속 미루어지다 2020년 코로나 사태로 개인적인 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앨범을 녹음하게 되었다. 작년에 발표된 Brad Mehldau, Fred Hersch의 피아노 솔로 음반처럼 이 앨범도 남메아리의 팬데믹 앨범으로 볼 수 있겠다.
음반의 제목 [House On The Rock]은 중의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가볍게는 그녀가 살고 있는 집의 이름이기도 하고 좀 더 내면적이고 근본적으로는 ‘반석위의 집’이라는 종교적 상징을 내포하고 있다. 기독교적 환경에서 성장한 남메아리가 지난 5년간 경험하고 느낀 삶의 여러 면면이 음악에 투영됐고 자연스럽게 저런 작명을 이끌었다. 남메아리는 이 음반을 자신을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와 고마움을 전하며 바친다고 한다.
1집 [Echo]도 훌륭했지만 이 앨범의 음악적 성숙은 괄목할만하다. 블루지하고 스윙감 넘치는 곡은 전에 비해 더욱 여유롭고 느긋한 그루브를 타고 있고 서정적이고 관조적인 곡들은 영적인 깊은 울림이 전해진다. 3곡으로 이루어진 [Dusk] 시리즈는 사전에 전혀 계획되지 않았던 녹음 당일 즉흥연주로 남메아리의 의식(또는 무의식)의 흐름 같은 자유로움이 전해지는 곡들이다.
앨범의 첫 곡이자 가스펠의 대명사인 [Amazing Grace]는 원곡 멜로디의 뼈대만 유지하고 흥겨운 뉴올리언스 리듬앤블루스로 편곡, 변주되었다. 곡목을 모르고 듣는다면 [Amazing Grace]인지 알아챌 수 없을 만큼 멜로디가 숨어있는 흥겹고 재미있는 곡이다. [Geri’s Idea]는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흑인여성 재즈피아니스트 Geri Allen에 대한 남메아리의 오마쥬이다. 훌륭한 연주자이자 존경받는 교육자이기도 했던 그녀는 어쩌면 남메아리의 롤모델일지도 모르겠다. 음악적 스타일로도 재즈블루스나 훵크를 연주하던 Geri Allen은 남메아리의 감성과 일맥상통한다. [She’s Gotta Have It]은 Spike Lee가 감독한 동명의 영화로부터 영감을 받은 곡으로 영화의 음악은 Spike Lee의 아버지인 Bill Lee가 맡았으며 뉴욕 흑인커뮤니티의 정서가 잘 드러난 영화다. 이 아름다운 곡과 또 다른 소품인 [Blossom]에서는 남메아리의 허밍보컬을 들을 수 있다. 앨범은 남메아리 전매특허인 재즈블루스스타일의 마지막 곡 [Your Blues]로 마무리 된다. 어릴 때부터 교회반주자로 복음성가를 연주했고 미국 유학생활에서 흑인뮤지션들과 교류하며 본격적으로 익힌 그녀의 블루지한 소울재즈가 절정을 맞는 순간이다.
이 음반은 무엇보다 사운드가 뛰어나다. 최근에 들었던 어떤 재즈음반보다 좋은 소리가 난다. 믹싱은 Fred Hersch, ECM레이블 소속의 한국밴드 Near East Quartet등을 담당했던 Rick Kwan이 맡았고 마스터링은 그래미상 수상 경력이 있는 사운드 장인 Vlado Meller가 콘솔을 잡았다. Vlado Meller는 수도 없는 명반을 만들어낸 대중음악의 살아있는 역사와도 같은 엔지니어이다. 두 사람의 솜씨로 훌륭한 곡들이 보석처럼 반짝반짝 다듬어졌다.
지긋지긋한 팬데믹은 역설적으로 남메아리와 우리에게 보석 같은 음반을 선사했다. 이제 팬데믹이 빨리 끝나 그녀의 공연이 보고 싶다.
- 정원석 (음악평론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