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앙과 음악
이 라이너노트는 전유동과 프로듀서인 단편선이 한 문단씩 번갈아 가며 썼다. 각자의 시선으로 싱글 [디플로도쿠스]를 바라보았다.
유동 _ 준비되지 못한 이별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그 이별이 모든 것을 평등하게 무로 돌리는 멸망이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준비나 고백이 과연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편선 _ 유동, 다음 곡은 언제 낼 건가요. [관찰자로서의 숲]이 발표된 직후였을 것이다. 음, 편선님. 저는 봄쯤에 내려고요. 그래요, 그럼 그렇게 해요. 얼마 후 유동은 ‘디플로도쿠스’의 데모를 보내왔다. 왈츠 리듬이네, 동화풍일까. 서로 이야기와 데모를 주고받으며 곡을 슬슬 발전시켜 나갔다.
유동 _ 돌연 “디플로도쿠스”라는 이름이 입 밖으로 나온 날, 나는 하루 종일 생각했다. 어째서 그 이름이 무의식중에 나왔는지. 그날 새벽,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꿈을 꾸고 숨을 몰아쉬면서 깼다. 그리고 멸종을 앞둔 디플로도쿠스의 이야기를 떠올리어 갑작스런 이별보다 예정된 이별이 더욱 가슴 아프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노래에는 커다란 운명을 마주하고 느낄 무기력한 상실감보다는 전하지 못한 진심을 전하는 동화를 담았다.
편선 _ 이 곡에는 어떤 이야기를 담겨있는 걸까요. 유동에게 물었다. 유동이 전한 이야기는, 조금 유치하고 뻔하긴 하지만, 사람의 근원적인 슬픔을 자극하는 종류의 것이었다. 어쨌건 슬픈 결말이네요. 하지만 무언가를 받아들인다는 게 꼭 슬픈 일만은 아니니까요. “이젠 준비가 됐어”라는 다짐이 슬프게만 들리지 않았으면 했다. 의지와는 관계없이 정해진 일이라면 그 속에서 어떤 숭고함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오래된 옛 철학자가 “네 운명을 사랑하라”라고 말했듯.) 후반부를 축제처럼 연출한 까닭이다.
유동 _ 두 번째 트랙, ‘마지막 이야기’는 정규 음반과 함께 발표된 책 [관찰자로서의 숲]에서의 글을 배우 차영남이 읽고 싱어송라이터 복다진이 피아노 연주로 채웠다. 음악에 담긴 풍경과 주인공들의 감정을 알 수 있는 ‘마지막 이야기’로 하여금 생소한 디플로도쿠스의 이름이 친근하게 전해지길 바랐다. 그리고 질문들을 나누고 싶었다. 재앙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어떤 마음을 나눠야 하는 것일까.
편선 _ 앨범을 내는 것은 곧 이정표를 세우는 일이다. [관찰자로서의 숲]이 이정표라면 [디플로도쿠스]는 이후의 궤적이다. 연장선에 있는 작업인 탓에 전작을 좋아했던 이라면 이번 작업 역시 좋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디플로도쿠스]를 작업하면서, 왠지는 모르지만 ‘이제 유동은 이것과는 다른 것을 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전작을 통해 선보인 작은 세계가 [디플로도쿠스]를 통해 일단락되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비로소 가벼워진 마음으로, 우리는 또 어떤 세계를 만들어내게 될까. 우리는 우리를 기대한다.
전유동(음악가) / 단편선(프로듀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