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따뜻함을 이야기하자
후하 [Spring]
by 김윤하(대중음악평론가)
후하의 음악을 들으며 따뜻함을 생각한다. 손발 끝이 꽁꽁 얼도록 놀다 들어간 집 거실을 가로지르던 꼬리 긴 겨울 햇살이, 무심코 쓰다듬은 길고양이의 작은 뒤통수가, 때마다 만나는 세상의 벽 앞에 비틀거릴 때마다 내밀어 준 사람들의 손이 따뜻했다. 바쁜 걸음을 늦추고 잠시 주위를 돌아보는 것만으로 온갖 따뜻함을 수집할 수 있다. 가만히 눈을 마주치는, 두 손으로 꼭 말아 쥐는, 가만히 등을 기대는 순간 온몸으로 퍼지는 포근한 온기. 헛기침 한 번 하지 않고 지금까지 우리를 살게 해 준, 미처 모르는 사이 우리 삶을 지탱해준 순하고 여린 구원이 그 안에 있다.
밴드 후하의 음악을 듣고 바로 그 ‘따뜻함’이 생각났다.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꼭 아무런 하루를 만들어 주는 그 든든한 포근함이. 후하는 싱어송라이터 성진영과 지고가 만나 시작된 인디 팝 트리오다. 서로 특별한 인연이 없던 두 사람은 어느 날 같이 밴드를 해 보지 않겠냐는 진영의 갑작스러운 제안을 지고가 딱히 갑작스럽지 않게 받아들이면서 시작되었다. 두 사람이 조금씩 만들어 가던 입을 모아 ‘후’하고 웃으며 ‘하’한 소리에 베이스 이환희가 합류했다. 밴드 시베리안허스키 출신으로 90년대 후반부터 활동해온 인디 조상님인 탓에 ‘내가 밴드 평균연령을 너무 높이는 게 아니냐’ 걱정하던 그가 밴드에 녹아들며 후하만의 이상하고 따뜻한 몸짓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2020년 10월 발표한 싱글 ‘Dance Dance Dance’와 ‘사랑의 주문’은 그런 후하가 처음으로 선보인 춤이었다. 나른한 오후에 켠 기지개 같기도, 늘어지게 나온 하품 같기도 한 이 춤이 만드는 파동은 계절을 돌고 돌아 드디어 봄에 닿았다.
앨범 [Spring]은 밴드 후하의 첫 EP이자 앞으로 이어질 계절 시리즈의 시작점이다. 앞서 발매된 싱글에서 보여준 후하만의 온도 그대로 봄의 생동감이 더해졌다. 첫 곡이자 타이틀곡인 ‘Alone’은 후하가 어떤 밴드인지, 후하의 음악이 어떤 이상한 따뜻함을 품고 있는지 누구보다 쉽고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사용설명서다. 세상 누구보다 나른한 표정을 지은 드럼과 기타, 베이스가 울렁울렁한 리듬을 만들어 내며 시작하는 노래는 노랫말 그대로 ‘해변을 보며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 느긋하게 즐기는 혼자만의 낮잠’을 천천히 그려낸다.
지구가 거꾸로 돈다고 해도 도무지 빨라질 생각이 없어 보이는 속도에 맞춰 어색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이다 보면, 신이 난 이들이 꺼내놓는 결 고운 인디 팝이 쉬지 않고 흐른다. 마지막 곡 ‘우표를 붙여요’까지, 하루가 다르게 커지는 마음과 풀리지 않는 의문과 그래도 흘러가는 하루가 봄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동시에 슴슴하지만 중독성 있는 후하만의 이상한 흥과 온기가 온몸에 천천히 퍼진다. 이들을 정식으로 만나는 첫 계절이 봄이라는 게 참 좋다. 지겨운 겨울 외투를 벗고 다시 찾아온 따뜻함을 모두가 반길 때, 후하의 음악만큼 어울리는 것은 없을 것이다. 우리 이제 따뜻함을 이야기하자. 딱 좋은 미지근한 온도에 맞춰 둥실둥실 춤을 추자.
후하 [Spring] 사용설명서
by 후하
Track 1. alone
출퇴근 길 막히는 도로 위에서, 만원의 대중교통 이용 시 들어주세요. 잠깐의 환기 효과가 있습니다. 걷다가 마주 오는 낯설 사람에게 어깨를 부딪혔을 때 들으면 더욱 더 효과가 좋습니다.
Track 2. 기억 Short Memory
화창한 낮에 오랜 친구, 오랜 연인과 카페 테라스에서 같은 곳을 바라보며 들어주세요. 조금 더 깊은 대화 유도 가능. 선선한 바람까지 불어오면 그것은 한편의 단편영화.
Track 3. 너의 능력
휴가를 떠나는 당신. 자동차 시동을 걸고, 엑셀레이터에 발을 올리며 들어주세요. 긴 터널의 끝에서 눈 앞에 바다가 펼쳐지는 상상까지 더한다면 그곳이 곧 파라다이스.
Track 4. 한참을 보았지
날씨는 너무 좋은데 아무 약속도, 계획도 없는 날. 명확한 이유도 없이 괜히 마음만 답답한 날 들어주세요. '다들 잘 모르고 그냥 사는가 보다. 공가 유도제와 쿨링 효과로 복잡한 머릿 속이 단순해집니다. 고개까지 끄떡거린다면 더욱더 효과가 증대됩니다.
Track 5. 우표를 붙여요
잠이 오지 않는 밤, 훌쩍 떠난 여행의 밤. 밤 하늘을 올려다보며 들어주세요. 그리운 얼굴, 보고픈 연인을 떠올리며 들으면 감성지수가 대폭 증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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