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직 (eeajik)' [공진 (resonance)]
부서지고 녹아 내리는 계절이다. 사람들은 외투에 얼굴을 파묻고 걸어간다. 누구와도 닿지 않겠다는 듯이. 누구도 닿게 하지 않겠다는 듯이. 누구에게나 두려움 따위는 삼킬 수 있는 때가 있었다. 파도처럼 밀려왔다 떠나버리는 시간. 가장 가깝게 다가와서, 머무르는가 하면 사그라지는 하얀 파도 거품처럼. 파도는 돌아 올 거란 걸 믿지 않을 수 있었다면 진작 떠났을 것이다. 무수한 끝을 보면서도 이 바닷가에 머무를 수 밖에 없다는 건 비극이다. 너의 울림으로 나를 흔들어주길 기대하면서. 공명에의 불가능에 투신하는, 어쩔 수 없는 사람들. 그러나 그 기대의 끝 역시 기대하고 있다면 작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린 날고 있는 게 아니라 느리게 추락하고 있다는 걸 안다면, 함몰할 파란 바닥을 함께 상상해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이 소리들은 도리가 없이 가라앉는 너와 나를 위한 투명한 노래이다. 어쩔 수 없는 순간들의 촉감이고 공기이다. 재차 겪어온 시린 바람 맞으면서도 바다 앞에 선 사람의 겸허한 슬픔이다. 그리하여 결국 사그라지는 순간들은 영원하게 된다.
글/ 류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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