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STAGE. 취향의 확장, 사운드의 확장
[Hello?] 10년도 훨씬 전, 특정한 음반 점에서만 파는 소박한 EP 한 장이 있었다. 아톰북이란 귀여운 이름을 가진 EP의 주인공은 [Hello?]라고 인사하며 자신의 소개를 하였다. EP 안에 담긴 다섯 곡의 노래들. 포크 혹은 이른바 '인디 팝'이라 부르곤 하는 음악이 음반 안에 가지런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 음악은 취향, 혹은 지향점의 음악이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이 무엇인지,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만이 만들 수 있는 노래들이었다. 이 확고한 취향의 음악을 주도한 이는 보컬과 어쿠스틱 기타를 연주한 최새봄. 아톰북에서 SP란 이름을 썼던 그는 빅베이비드라이버란 이름으로 자신의 개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아톰북에서 빅베이비드라이버로, 그리고 다시 빅베이비드라이버트리오로 편성은 조금씩 바뀌었지만, 그 안의 취향은 여전히 확고했다.
'좋은 곡'이란 게 무엇인지 이론적으로 잘 설명할 수 있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난 빅베이비드라이버가 '좋은 곡'을 쓰는 음악가라 생각한다. 이것이 그저 직관적인 것이든 취향에 의한 것이든 그가 만들고 부르는 노래들은 기품이 있으면서도 귀에 잘 들어온다. 그런 그의 노래들은 [신사의 품격], [상속자들], [드라마의 제왕], [연애조작단: 시라노] 같은 드라마·영화 음악에 삽입되며 빅베이비드라이버란 이름보다 노래 자체가 더 많이 알려져 있기도 하다.
빅베이비드라이버의 노래 가운데 '38,000km 너머의 빅베이비'란 노래가 있다. 지구와 달 사이의 거리인 380,000km에서 숫자 '0'을 빠뜨린 실수로 인해 생겨난 노래 제목이기도 하지만, '빅베이비'란 이름을 가진 그의 어쿠스틱 기타와 그 사이의 감정의 거리이기도 하다. 자신의 기타에 애칭을 붙여줄 정도로 그와 기타는 한 몸 같았다. 그는 늘 기타를 튕기며 노래를 불렀고, 빅베이비 없이 노래하는 그의 모습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만큼 그는 기타를 잘 치기도 한다. 최새봄과 빅베이비는 그렇게 확고한 취향과 좋은 곡을 가지고 인디 동네에서 이름을 알려왔다.
그리고 여기 또 한 번의 취향의 확장이 이루어졌다. 빅베이비드라이버가 아닌 빅베이비드라이버트리오. 트리오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기타-베이스-드럼이라는 밴드 구성이었고, 빅베이비드라이버의 손에서는 어쿠스틱 기타 대신 일렉트릭 기타가 쥐어져 있었다. 앞서 나는 '확장'이란 말을 썼는데 이는 취향의 확장이기도 하며 동시에 사운드의 확장이기도 하다. 혼자서 어쿠스틱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빅베이비드라이버의 음악에 포크와 인디 팝의 향이 자연스레 묻어났다면 트리오의 구성에선 우리가 흔히 '인디 록'이라 불러온, 1990년대 당시의 음덕들을 설레게 했던 록 사운드가 자연스레 드러난다.
일렉트릭 기타가 만들어내는 다양한 톤의 변화와 노이즈가 곡을 주도하고, 이를 받치는 탄탄한 베이스와 드럼이 있다. 베이스를 연주하는 백옥성은 아톰북 시절을 함께한 연주자고, 드럼을 맡고 있는 이용준은 사이키델릭·포스트 록 밴드인 비둘기 우유의 드러머이기도 하다. 이들은 각자의 취향과 스타일과 지향점을 더해 트리오가 만들어낼 수 있는 사운드를 구현해낸다. 온스테이지 영상에서도 이들은 자신들의 취향을 드러내고 사운드를 구축해나가는데 집중한다. 노래의 비중은 오히려 크지 않다. 앨범을 대표할 만한 싱글 'A Line in the Sky'를 빼고는 'Golden Boy'는 아예 연주곡이고, 침잠과 상승을 거듭하는 'Untitled' 역시 연주가 곡을 이끌어나간다. 그럼에도 좋은 멜로디와 무드, 그리고 밴드로서의 탁월한 사운드 운용은 노래의 비중이 작아도 귀를 잡아끈다. 좋은 재능이 확고한 취향을 만날 때 어떤 긍정적인 결과물이 나오는지 여기 빅베이비드라이버트리오가 영상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