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들 (PICTIONS) [아이 (3)]
나는 외롭고 재주 없는 남자라 뜨거운 사랑은 못할 것 같았다. 너는 어제를 태운 장작이라 잿더미를 집으로 삼았다. 우린 비 고인 웅덩이에 짚으로 된 샌들을 푸닥거리며 서로 믿지 않는 신에 대해 이야기했다. 너는 지옥을 보여준다며 감긴 두 눈두덩 위를 엄지 끝이 하얘지도록 내리누르던 어느 목사의 이야기를 했다. 나는 룸싸롱에서 탬버린으로 목탁을 친다던 어느 주지의 이야기를 했다. 너는 영혼을 믿는다 말했다. 나는 믿지 않았지만 굳이 말하지 않았다. 우린 선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죽은 다음 세계를 믿는 사람의 선행은 얼마나 아름다워? 죽으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선행은 얼마나 선해? 너는 열심히 대답했으나 내가 듣기엔 살짝 핀토가 나가 있었다. 그러나 잔말 않고 들었다. 나는 네가 열렬히 말할 때 진동하는 입술과 아랫니 언저리에 심심찮게 고이는 침방울이 좋았다. 너는 아무 회사에나 들어가 보고 싶다 말했다. 회사를 관둬보고 싶기 때문이라 했다. 나는 네가 이천자 이력서를 다 못 채울 걸 알았지만 재밌는 생각이라 말했다. 우리는 시집에 대해서도 말했고 영화에 대해서도 말했고 음악에 대해서도 말했다. 취향이 그대로 유지되는 건 취향에 신경 쓸 시간이 없다는 뜻이라 말하며 둘 다 수긍했다. 나는 가끔 전혀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터지는 네 울음에 대해 얘기했다. 그러자 넌 가끔 아무 맥락 없이 차분해지는 내 묘한 버릇을 이야기했다. 우린 어둑함을 지나 허할 정도로 새까매진 밤을 더듬대며 걸었다. 안경 없이 맨 눈으로 바라볼 때 멀리서 다가오는 헤드라이트를 우리 둘 다 사랑했다. 빛이 모양을 잡고 뾰족히 번져 나가는 잔향이 눈에 담길 때의 몽롱함이 아름다워 사랑했다. 우리는 또 둘 다 사랑하는 것들을 찾고 얘기했다. 우린 무반주로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는 걸 좋아했으며, 식당에서 불가피하게 들려오는 옆자리 사람들의 대화에 가까스로 웃음 참는 행위를 좋아라 했다. 또 우린 꽃을 좋아했으며 그림을 좋아했고, 색을 좋아했으며 하늘과 구름, 달과 어스름을 사랑했다. 모든 이가 사랑할만한 무언가를 우리만의 독특한 코드라 여기며 소중히 적어 두는 것 역시 사랑했다. 나는 외롭고 재주 없는 남자라 뜨거운 사랑은 못할 것 같았다. 너는 어제를 태운 장작이라 잿더미를 집으로 삼았다.
Cover Design by 유민희, 「라벤더를 든」
Written and Arranged by 문학
Guitar Performed by 박성범, 강덕훈
Vocal Recorded by 이건우 @Starfield Records
Mixed and Mastered by민상용 @studio LOG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