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들 (PICTIONS) [생각보다 더 빨리 (4)]
인연을 끈이라던가, 실이라던가 하는 모양으로 상상하면 머리가 복잡해 그만두었다. 그리 무수히 엉켜 있다면 실을 여기저기 풀며 어딜 나다니는 것도 다른 인연들에게는 실례인 셈이었다. 멀리서 보면 지구는 큼지막한 실뭉치처럼 보이겠지. 눈에 보이지 않아 다행이었다. 어지러이 엉킨 무언가를 푸는 건 이어폰만으로 충분했다.
나는 어느 해의 겨울 어딘가에서 너를 알았다. 너의 뒷모습만 보고 이미 마음의 크기가 눈을 마주쳤을 때와 같았다. 인연의 모양을 믿어야 했고, 막막한 무언가라도 선명하길 빌었다. 너와 나는 차분했고 닿아 있지 않았기 때문에. 내 눈은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찾듯 가늘어졌고 너와 나는 흘깃 부딪힌 모든 이가 그렇듯 엉켜 있었지만, 실의 이름이 우리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너에게 조바심과 멋쩍게 건넨 인삿말이 되었고, 너는 내게 다시는 마주치지 못할 어느 날의 들꽃이 되었다.
너를 위해 쓰진 않았으나 너를 원해 썼던 몇 개의 곡을 그리 단정치 못한 모습으로 보내온다. 그날의 목소리가 나지 않았고 그날의 마음도 부를 수 없었다. 까끌한 오디오, 소리 내어 아파하는 가사는 지금의 내 것은 아니지만 고쳐 부르고 예쁘게 다듬으면 다른 곡이 되어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 어제의 내가 부른 어제의 나를 오늘에야 놓아준다. 그러고 보니 너는 나의 어제였구나.
Cover Design by 유민희, 「너는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고,」
Written and Arranged by 문학
Vocal Recorded by 문학, 2014年12月
Guitar Performed by 파나마료브 다니엘
Mastered by 이재수 @Sonority Mastering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