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들 (PICTIONS) [그런 섬 (7)]
고립이라는 단어는 따스하게 들린다. 내가 고립되어 감에 따라 더더욱이. 내 머릿속엔 섬이 있다,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반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그런 섬. 얼마 전 다리가 끊겨 이제 나는 걸어서는 갈 수가 없어. 배를 타고 가야 하는데 나는 배를 끌 줄 몰라, 그렇다고 남이 태워주는 배를 타고 가자니 누군지도 모르는 그 사람이 내 섬을 밟게 될까 싫어. 그래서 네가 멋지게 배를 타는 상상을 해. 닻을 올리고 돛을 올리고, 멍청한 증기기관 따윈 없는 그런 낭만적인 배(멀미는 또 심하지 않은). 그런데 너는 자동차 면허도 없는데 무슨 배를 몰겠어? 그래서 내가 꿈꾸는 건 우리 둘이 우연히 파도와 해일에 휩쓸려 가는 거야. 우리는 여기 사람들만 없으면 진짜 좋을 텐데, 다 죽었으면 좋을 텐데, 싶을 정도로 모르는 사람들로 가득 찬 해변의 그나마 조용한 끄트머리에서 수영을 해. 그러다 너무 깊이 들어왔지 싶을 때 천둥벼락이 치고 하늘은 깜깜해지고 너랑 나는 고질라 같은 큰 파도에 휩쓸려 떠밀려 가. 장면이 바뀌면 어느새 하늘은 새파래 태양은 두둥실 떠 있고 정신을 잃은 내가 어느 섬의 뜨거운 모래바닥에서 눈을 뜬다. 그만큼이나 거친 파도와 해일이었지만 나는 영화에서처럼 기침 몇 번만 하면 이내 정신을 차린다. 또 영화에서처럼 정말 우연히도 너는 내 아주 근처에 있었네. 내가 누구누구야 하고 이름만 몇 번 부르고 몸만 몇 번 흔들어주면 너도 콜록콜록, 여기가 어디야? 한 마디면 정신을 차려. 그러면 우리는 그때부터 자유야.
자유는 뷔페가 아니다. 아니, 반대로 뷔페는 자유가 아니다. 무제한의 시간과 무제한의 접시, 원한다면 무한한 포크를 줘도 그날의 음식 가짓수가 정해져 있다면 뷔페는 자유가 아니다. 저는 뷔페가 자유가 아님에 감사했습니다. 음식의 가짓수마저 무한했다면, 저는 금세 내 위장은 무한하지 않다는 걸 깨닫고, 후회하지 않기 위해 어떤 음식을 담아야 할까, 어떤 음식으로 멍청하게 배를 채워선 안 될까, 고민하며 무한히 넓은 뷔페를 뛰어다니며 무한히 많은 음식들만 살펴보다가 어떤 음식도 고르지 못하고 굶어 죽었을 거예요.
나는 지금 자유의 뷔페 안에 있다. 나는 지금 어떤 것도 고르지 못하고, 계속 뷔페 안을 뛰어다니며, 배고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반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를 원해, 그러나 너도 배를 몰 수 없고, 그런 파도는 올 수 없고, 고립이라는 단어는 따스하게 들린다. 내가 고립되어 감에 따라 더더욱이.
Cover Designed by 유민희, 「밤이 오자 네가 물결친다」(acrylic on canvas, 2018)
Written and Arranged by 문학
Mixed by 문학
Mastered by 문학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