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들 (PICTIONS) [나의 밤에 계단을 놓으면 (8)]
진공의 아궁이에 발화를 참는 낯선 땔감, 나는 유리로 포장된 빛나는 악취의 구매 대기열에 결국 섰다, 내가 그렇게 욕하던, 나는 책상에 앉아 문자로 말미암아 탐미를 공부하며 깨우쳤다 믿었으나, 눈부시지 못한 그 어떤 것도 우리에겐 아름답지 않다는 사실은 뒤늦고도 필연적으로 내 머리를 후려친다.
나는 대기열의 사람들을 훑어본다, 나는 노파를 발견한다, 노파는 정정하나 노파이다, 노파는 밤이 두렵다 말한다, 나는 노파도 밤이 두렵다는 사실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노파는 겁이 많다, 노파는 홀로 사는 집 대문 위 감시 카메라를 달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 어떤 기사도 카메라를 달아주지 않는다, 그 어떤 젊은 위협도 노파를 밟지 않는다, 설사 밟힌다 해도 노파는 피할 수 없다, 노파의 불안은 우스워진다, 노파의 불안은 우습다, 노파는 죽음에 능해야 한다, 노파는 죽음을 삶처럼 여기며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노파는 덤덤해야 한다, 노파는 홀로 지새는 늙은 새벽의 윙윙대는 바람 소리를 찢고 퍼지는 낯선 발자국과 낡은 문고리가 어기적대며 들썩이는 소리에도 동요해선 안된다, 노파의 불안과 빛나는 유리와 악취와 질문과 대답이 기침에 섞인다, 앞선 젊은이는 노파의 기침에 질겁하며 타박한다, 노파는 줄의 맨 끝으로 가야 한다, 노파가 줄의 끝에 다가갈수록 줄은 계속해서 늘어난다, 길어진다, 노파는 걸음을 재촉해보지만 소용없다, 그 어떤 젊은 욕망도 노파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설사 기다려준다 해도 노파는 잡을 수 없다, 나는 더 이상 그녀를 바라보기 힘들어 눈을 질끈 감는다.
진공의 우주에 발포된 총알은 날아오르는가, 나는 금리를 모르는 고리대금업자에게 두어 시간을 빌린다, 차용증을 작성하고 나가려는 때에 고리대금업자는 선이자를 떼고 가라 말한다, 선이자는 십 퍼센트로 십오분 남짓이다, 나는 빛이 바래고 헤진 검정색 에나멜 소파에 다시 풀썩 앉는다, 나는 멍청히 앉아 시계를 바라본다, 사무실에는 가끔 꼴깍대는 나의 침 소리와, 고리대금업자의 무릎을 떠는 소리와, 똑딱거리는 초침소리만이 울린다, 얼마간 후 나는 이제 됐소? 물어보며 몸을 일으킨다, 황동의 문고리에 손을 얹으니 싸늘하고 낯설다, 시계 방향으로 돌리니 어기적대고 들썩인다, 나는 숨을 죽이며 노파의 방에 들어선다, 노파는 감시 카메라를 원했다, 그러나 그 어떤 기사도 카메라를 달아주지 않았다, 나는 누워 있는 노파를 본다, 노파의 발끝이 이불 밖으로 삐져나와 있다, 그녀의 발이 달달달 떨린다, 노파의 불안과 빛나는 유리와 악취와 질문과 대답이 기침에 섞인다, 터져 나오는 기침은 그녀의 연기를 망친다, 노파는 겁에 질려 말한다, 나는 시간이 많지 않아, 그러나 나 역시 시간이 많지 않다, 아니 세상 그 누구도 시간이 많지 않다, 나는 노파의 머리를 후려친다, 눈부시지 못한 그 어떤 것도 우리에겐 아름답지 않다는 사실을 그녀는 알고 있었을까?
Cover Designed by 유민희, 「공시성 (Synchronicity)」(acrylic on canvas, 2017)
Written and Arranged by 문학
Mixed by 문학
Mastered by 문학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