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토해내고 싶을 때가 있다.
숨이 막혀 더 이상 침묵할 수 없을 때,
부담 주기 싫은 주변인 대신
핸드폰 속 이름 모를 사람들 앞에 엉킨 속을 게워 낸다.
솔직함이란 미덕에 집착해서인지
웬만하면 SNS에 올리기 꺼려지는 모습들도
있는 그대로 남기려고 애쓴다.
우울한 감정, 다소 예민한 주제.
분노와 어리광, 번뇌의 흔적.
나를 공유할수록
더 깊숙이 들여다보길 원하는 이들과
더 멀리 거리 두길 바라는 이들로 극명히 나뉜다.
어느 날 지인이 이렇게 말했다.
“일부러 불편한 사람이 되려고 하지 마.”
복잡했다. 정말 내 게시물의 전부가 민폐였을까 불안하다가도,
‘배려’라는 옷으로 속내를 감추는 것이 억울했다.
그러나 가치가 없는 말은 아니기에 적당히 수긍했다.
불편을 주는 사람은 이곳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가족과 정치적인 이야기를 피하는 것,
내 고민의 무게를 친구에게서 거두는 것,
폭력적인 직장에서 평화를 지키는 것.
남을 ‘배려’하는 것을 통해 나의 잠재적 손해를 줄이는 방식으로
우리는 방어적 윈-윈을 달성한다.
나는 그래서 규범 자체를 문제 삼고자 하지 않는다.
얼마나 유용한 생존 도구인가. 되려, 수용할 것을 권장한다.
그렇다. 너는 불편한 사람이 되지 말라.
너는, 너에게 불편한 사람이 되지 말라.
네가 너를 불편하게끔
입을 꿰매 버리지 말라는 말이다.
네가 너를 불편하게끔
진심을 방치하지 말라는 말이다.
네가 너를 불편하게끔
평화의 사도를 자처하지 말고,
너를 배려하지 못한 여파로
너를 잃어
루즈-루즈로 나아가지 말라는 말이다.
부디 불편한 사람이 되지 말라.
닥쳐주지 말라.
너, 너
살아남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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