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술도 인생이다.”
가인 최성수가 정규 13집 타이틀곡 [혼술]을 들고 지치고 힘든 이들에게 '혼술도 인생'이라며 위로를 건네는 메시지를 전한다.
싱어송라이터 최성수는 40여 년 곡을 쓰며 노래할 때가 가장 행복하고 곡 만들 때 가장 삶의 기쁨을 느낀다고 한다. 그의 노래는 사랑에 대한 예찬, 인생의 아픔과 기쁨을 써왔다. 86년 '남남'으로 인기 가수의 이름을 올린 후 ‘애수’, ‘동행’, ‘해후’, ‘기쁜 우리 사랑’, ‘풀잎사랑’, ‘후인’, ‘TV를 보면서’ 등등 지나고 나니 그의 삶이 노래이자 자기 모습이었다.
국민 가수가 되었으나 지식에 대한 갈구, 예술가의 길, 아티스트로서 삶의 고민은 결국 유학 길을 선택하게 했고 미국 버클리음대에서 공부한 후 예술가적 깊이와 인간미 넘치는 모습으로 돌아와 다시 대중 앞에 다가왔다.
이번 13집 음반은 우연한 만남이 가져온 선물이다. 사람의 인연을 결코 가볍지 않게 보는 최성수의 따뜻한 인간미를 보여준다. 이 앨범 작사를 한 시인 이원필은 방송 출연과 같은 동네 주민으로 만나 그의 이야기를 술잔과 함께 전해 듣고 그야말로 선술집에서 술잔으로 탁자를 탁 치면서 세상 얘기를 함께 써간 콜라보이다. 이원필 시에 곡을 붙이는 작업과정도 드라마틱 하다.
타이틀 ‘혼술’의 얘기를 듣는 순간 “아.... 빨리 집에 가서 곡을 써야겠다.”라며 일찍 헤어진 기억. 장마 철 내내 빗소리에 곡을 붙이며 데모가 녹음이 되고, 그 외 ‘이유는 묻지 마세요’, ‘엄마의 실감개’, ‘개밀고개’, ‘산에서’ 등도 “어떻게 그리 빨리 곡을 썼는지 비가 계속 와야겠다.”라며 나눈 시인과의 농담까지도 이 앨범에 잘 녹아 있다.
소리에 대한 작업은 몇 날 며칠 아니 몇 년을 반복해서 들어도 지겹지가 않다. 최성수는 이 노래들을 수천 번 들었다고 한다. 가사가 주는 힘과 노래 듣는 사람의 기분과 표정까지 상상하며 듣고 또 들었다고 한다. 노래 만드는 동안 너무나 쉽게 만들어지고 입에 착착 붙어서 그 자신이 깜짝 놀랐고, 어떨 땐 “앗... 난 천재!” 하는 착각에 혼자 웃을 때도 있었다고 한다.
요즘 트렌드에 따라 네오 트롯(Neo Trot.)이지만 ‘최성수 표’ 노래이고 신곡이다. 여기에 지난번 코로나로 지친 이들을 위로하자고 만든 최백호 유익종 이치현 최성수의 노래 ‘이번 생은 이대로 살기로 하자’와 애창곡 ‘산 넘어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를 재즈와 오케스트레이션 편곡이 절품이고, 장사익 선생의 앨범을 만든 기성 임동창 선생의 곡 ‘내 인생은’도 수록되어 앨범의 격을 높였다. 또한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깊이를 예술로 표현하는 작곡가 이웅의 편곡은 격조 높은 앨범을 탄생시켰다.
예술음악과 대중음악의 경계에서 늘 고민하고 있다는 최성수, 마음 한구석에 채울 수 없는 수준 높은 음악에 대한 동경은 늘 그를 열등의식에서 채찍질하고 있다.
‘혼술도 인생’이듯 이번 앨범을 통해 삶에 지친 모든 이들이 위로와 힘을 얻기를 바란다.
스트라드 뮤직에서 그 동안 발표된 ‘류정필’, ‘한경미’, ‘김순영’의 크로스오버 음반들과 ‘박상민’, ‘이영하’, ‘지현’, ‘임선호’의 대중 가요음반들을 살펴보면 대중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간직하면서 새로운 음악적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는 의미 있는 시도를 지속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최성수의 혼술 또한 이러한 흐름을 같이하며 스트라드 뮤직만의 음악적 가치를 실현해 나가고 있다.
이번 음반의 모든 곡은 이원필의 가사와 최성수의 작곡, 이웅의 프로듀싱과 편곡 이렇게 3박자가 맞물려 이루어진 앨범으로 놀라울 정도의 음악적 결과물을 보여주며 앞으로의 새로운 음악적 행보 또한 기대하게 만든다.
- 음악 평론가 ‘임진모’ -
"35년 넘게 시적(詩的), 문학적, 감성적 음악영토를 구축해온 노래시인의 진면(眞面)이 고스란히 배인 회심작. 삶의 이력과 관조가 빚어낸 언어들에 대한 최성수의 해석은 짙고 영글어 있다. 가사를 음미하는 것만으로도 그의 음악을 이해하는 사람들에게는 행복이다!!"
- 임병걸 / 시인, KBS 부사장 –
사랑, 그 영원한 노스탤지어
‘혼술’을 작사한 이원필 시인은 어느 날 지인으로부터 비 내리는 날 혼자서 낮술을 마시고 있다는 외로움이 서린 전화를 받고 가사를 썼다고 한다.
예부터 술은 벗과 함께 혹은 연인과 함께 마셔야 흥이 더했다. “자네 집에 술 익거든 부디 날 부르시소, 내 집에 꽃 피거든 나도 자네 청해옴세.”
조선 중기 문인 김육의 권주가 한 대목처럼 술이 있는 곳에서는 벗 생각이 나고 벗을 만난 자리에는 술이 생각났다. 그런데 이제는 격의 없이 부를 벗도 줄어들고 혼술의 가사처럼 ‘마주앉은 내 그림자’와 술잔을 기울여야 하는 세상이 됐다.
혼자 술을 마시다 보면 누구나 사랑했던 사람이 떠 오르고 ‘가슴에 숨겨놓은 외로운 섬 하나’ 찾아 기억 저편으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런데 혼자서 술잔을 기울이는 일은 분명 쓸쓸하고 처연한 노릇이지만 꼭 슬플 일만은 아니다.
황동규 시인은 자발적 외로움을 ‘홀로움’이라는 멋진 신조어로 표현했거니와 떠들썩한 술자리에서 벗들과 권커니 잣커니 할 때는 느낄 수 없는 향기로운 추억을 되새김질하는 데는 되레 혼술이 제격이다. 그리하여 ‘인생은 짧고 술잔은 긴’ 역설을 탄생시키며 영원한 별을 마시는 '혼술도 인생'의 한 대목이라고 한다.
‘혼술’에서 촉발된 사랑하는 여인과의 안개비처럼 촉촉하고 아련했던 기억은 '이유는 묻지 마세요' 에서 사랑의 본질에 대한 사유로 전이된다. 하필이면 어떤 사람을 왜 사랑하게 됐는지를 따지는 것은 부질없고 불가능하다. 사랑은 이성의 냉철한 발로가 아니라 일종의 정신착란과 광기 같은 감성의 분출에 가깝지 않을까?
이원필 시인은 그래서 사랑은 ‘바람도 없는 날에 배가 흔들거리면 물 속이 부글대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랑이 어떻게 어디로부터 내게 오는지 알 수 없듯이 어디로 언제 왜 떠나가는지 역시 아리송하기는 마찬가지다.
다만 남겨진 사람에게는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겨놓으면서도 정작 떠나간 사람은 ‘잔잔한 호수처럼 흉터도 없이 상대를 지워버리고 다른 연인과 또 실물결을 일으키는’ 세태가 야속할 뿐이다.
이원필 시인의 ‘사랑타령’의 거대한 뿌리는 그러나 어여쁘고 젊은 여인이 아니다. 너무 일찍 시인을 두고 하늘나라로 가신 어머니의 품이다. 호롱불 앞에서 졸음과 함께 감던 ‘양손에 실타래를 끼우고 엄마와 실타래를 풀던’ 시절 어머니는 어린 아들을 타이른다. 가난했던 농촌 가혹했던 가부장제의 틈바구니에서 평생 차별과 삶의 멍에를 짊어지셨을 어머님이지만 원망도 한탄도 하시지 않고 그저 ‘감겨진 일은 언젠가 풀어지게 되어 있다’고 너그러이 마음 먹으신 어머님 ‘영원히 구부러진 일은 없다고’ 가르치시는 저 무한대의 사랑. '엄마의 실감개'에서 묘사된 어머니의 그 사랑이 이원필 시인이 평생 붙잡고 가는 사랑의 화수분이고 원형질이다.
하여 이원필 시인은 ‘개밀고개’ 에서 뼈에 사무치는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노래한다. 시집오던 날 두고 온 고향을 그리며 눈물로 넘었을 고개, 자식을 남겨두고 차마 눈감지 못하셨을 어머니 육신이 묻힌 그 고개 ‘비가 오면 마음으로 바람 불면 옷깃으로‘ 자식 걱정과 사랑에 눈물 마를 날 없던 어머님의 젖은 옷깃이 생각나고 언젠가는 어머니 곱던 손 붙잡고 꽃구경 하고 싶은 애잔한 심경을 토해놓았다.
’산에서‘는 그리운 이는 이승에서 다시 못 만난다는 애달픈 현실을 상기하면서도 밤이 이울면 마침내 붉은 태양 떠오르듯 그리운 연인과 벗과 함께 노을과 별이 되어 살아가리라는 긍정의 세레나데를 산길과 같은 인생길을 따라 읊조린다. 내게 이 노래는 누이를 먼저 보낸 슬픔을 노래하면서도 서방정토에서 다시 만나리라는 찬란한 희망을 노래한 신라의 고승 월명사의 ‘제망매가’를 떠올리게 한다.
이 음반에 담긴 노래들은’ 해후‘ ’동행‘과 같은 페이소스 짙은 서정적 노래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최성수 님의 한층 호소력 깊은 목소리에 담겨 더욱 듣는 이의 가슴을 저미게 한다.
혼술에서 시작해 여인에 대한 사랑, 그 사랑 너머 어머니에 대한 사랑, 죽음을 넘어 재회를 굳게 믿는 절대긍정의 사랑으로, 마치 동심원처럼 퍼져나가는 이원필 시인의 노래를 듣다 보니 정말 대낮인데 술 한잔이 땡긴다.
나도 ’혼술‘ 한 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