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라가 펼쳐놓은 현재의 시간
벨라는 “음악가이자 DJ이다. 감정의 균형을 향한 다양한 길을 찾는다. 젠더 논-바이너리이며 아시안이다. bela는 소문자로 표기한다"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내가 소개하고 싶은 벨라는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방식으로 빠른 음악을 아름답게 표현하면서 플레이하는, 어느 순간 우리 옆에 다가온 디제이이며, 자신이 직면한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적절하게 표현하는 음악가이다.
2019년 겨울, 크리스마스 선물로 벨라가 보내준, 자신이 작업한 음악들을 듣고 작게나마 놀란 적이 있다. 그전까지는 단순히 디컨스트럭티드 클럽 사운드나 레이브에 가까운 음악을 플레이하는 디제이로 생각하고 있었던 벨라의 다른 면, 혹은 본심에 가까운 이야기를 들은 느낌이었달까. 빠른 음악만 플레이하는 줄 알았던 벨라가 마음속에 담고 있던 음악, 이야기는 본래 여기에 가깝지 않았을까 싶은. 그 사이 벨라는 중국과 일본 투어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꾸준히 리믹스 작업과 믹스셋을 발표하기도 했다. 한편으로 디제이 귀신이라는 다른 자아로 등장해 범접할 수 없는 속도의 디제이라는 위치를 확고히 하는 데 성공한다.
많은 사람이 알지는 못하지만, 벨라는 2018년 겨울부터 2019년 봄의 시간을 담은 앨범 ‘why are you so lost sweetie’를 시작으로 밴드캠프와 사운드클라우드를 통해 꾸준히 작업물을 발표해왔다. 그리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2020년이 다가왔다. 2020년 여름, 벨라는 자신의 친구들에게 ‘to resonate in a universe’라는 이름의 EP를 보낸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지 않아, ‘Relict Knowledge, Was it You, The Crook?’이라는 EP를 밴드캠프를 통해 발표한다. 이 두 장의 EP를 체크한 헬리콥터 레코즈의 유일한 직원은, 2020년이라는 시간의 축에서 생겨난 감정이나 이야기에서 비롯한 음악이라는 생각이 들어 ‘2020’이라는 이름으로 묶어 발표하자는 제안을 하게 된다.
다시 말하지만, 벨라의 ‘2020’은 2020년에 벨라가 발표한 두 장의 EP를 모아 놓은 앨범이다. EP를 만들게 된 계기에 대해 벨라는 “특정한 개념이나 사상을 주제삼아 녹여낸 것은 아니에요. 아마 코로나 사태 때문에 집에 갇혀 살며 유튜브나 대학 강의로 정보가 계속 쌓여가는 상황에 적응하면서 떠오른 것들이 아닐까 싶어요”라고 설명한다.
두 작업은 각각 양자역학과 신경과학의 얕은 지식을 가지고 2020년의 세상을 이해하려는 벨라가 남기는 일지다. 자신의 손과 타인의 손의 원자들이 일으키는 전자기적 저항의 정보가 나트륨-칼륨 펌프로 작동하는 신경 세포를 타고 뇌에 전해져서, 과거 경험 때문에 연결된 뉴런들의 경로가 동시 발화되며 이것이 상대방과의 생소한, 혹은 반가운, 혹은 적대적인, 혹은 그 모두 다를 포괄하는 복잡한 감정의 ‘악수’임을 인지하는 과정, 자신이 세상을 이해하거나 혹은 심각하게 오해하는 물질적 과정을 서서히 파악해가며 남긴 사적인 기록이다. 이해되지 않는 어떤 세상의 현상들을 받아들이려는 벨라의 시도를 지켜보며 위안을 얻을 수 있을 뿐이다.
즉, 벨라의 음악이 어떤 장르에 속하는지, 어떤 악기를 사용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곡을 만드는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벨라는 약간의 실마리를 다음과 같이 주고 있다. “별 의도가 없다고 해도 좋아요. 일지며, 기록 같은 것들이니까요. 제 생각과 감정을 처리하는 방식이 소리 안에 자연스럽게 넘쳐흘러 있지 않을까요?”
‘2020’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Yeong Die의 ‘Finite Numbers’ 리믹스와 벨라의 ‘Sunny Sunday’ 초기 버전이 추가되었다. 이미 공연을 통해 몇 차례 공개되었던 Yeong Die의 리믹스는 공연을 본 사람들에게 무슨 곡인지 문의가 올 정도로 화제가 되었던 곡이다. 기본적인 작업은 모두 벨라가 담당했으며, 마스터링은 쾅프로그램의 멤버이자 음악가인 최태현이 담당했다. 디자인은 MHTL의 대표 맛깔손이 담당했다.
2020년은 우리 모두에게 어떤 시간이었을까. 구글의 서버가 처음으로 멈춘 해, 플라스틱이 더는 재활용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차린 해, 수많은 사람이 명을 달리 한 해? 모두의 시간이 동시에 멈췄고 알 수 없는 맥락으로 흘러가고 있는 이 순간, 벨라의 ‘2020’을 들으면서 현재의 시간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길.
헬리콥터 레코즈 기획과 제작, 150장 테이프 한정 발매. 2021년 1월, MOrecords를 통해 각종 디지털 플랫폼에 유통되며, 만선과 헬리콥터 레코즈의 밴드캠프에서도 접할 수 있다.
Distributed by MOrecords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