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눈처럼. 새의 전부
겨울은 추위와 바람으로 가혹한 계절이지만, 가차없이 아름답기도 하다. 그 아름다움의 팔할은 눈의 몫. 차가움이 우리에게 허락한 가장 아름다운 환상 이 있다면 그것은 눈 내리는 한때일 것이다. 눈은 내리고, 덮고, 빛나고, 마침 내 사라진다. 사라진 자리에서 꿈을 꾼 것 같은 기분으로 눈길을 거두지 못 할 때, 풍경은 사라지는 방식으로, 현실에서 꿈으로 자리를 옮겨 앉고 더 오 래 살아남는다. 내내 기억되지 않더라도, 문득, 깜빡, 나도 모르게 켜지는 낮 고 노란 빛의 조그만 등이 된다. 어찌보면 노래가, 음악이, 시가 그렇게 살아 남는다.
차가운 겨울 공기가 담긴 노래 두 곡이 도착했다. “조용하게, 힘차게 걸어가 고 있는(그렇게 말하지 말아요)” 듀오, [새의전부]의 새 노래들이다.
[L]은 먼지처럼 부유하는 건반 뒤 조용조용한 소음들이 들려오는 혼자만의 산책이다. 모든 소리들이 후경으로 물러날 때 나 혼자 외워보는 주문 – 이제 당신을 사랑하고 싶은데 / 남은 미움은 떠나가지 않아요. 독백이 해줄 수 있 는 일은 별로 없겠지만, 노래는 무언가 해주기도 한다. 나즈막히 토닥이는 손길 같은 것이 된다.
떠나가지 않을 미움이라도 덮일 수는 있다. 덮여갈 때 만큼은, 눈 내리는 한때처럼, 꿈 같은 아름다움이 허락되었으면 한다. [하얀 눈처럼]은 꾸밈 없이 소박한 노랫말보다 그 사이 가만히 머무는 여백이 더 많은 노래를 한다. 덮인 것은 위협하지 않고, 세상은 공평한 여백이 된다. 이원혜의 건반이 그토록 느리게 걸음을 내딛고 한소리의 음성이 그토록 여리게 투명해질 때, 소리와 소리 사이 조그만 허밍이 공기처럼 퍼질 때, 가만히 생겨나는 여백에서 이상하게도 충만함이 느껴진다. 이 빈 공간에 마음을 주는 순간은 어쩌면 내 일상에서 잠깐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문득, 깜빡.
“하얘졌으면 좋겠어요 / 소복히 쌓여 희게된 내 머리처럼 내 마음도” 라고 노래할 때, 내 마음 속에 그 낮고 노란 빛의 등이 켜졌다는 걸 알게 되었다. 눈 내리는 창 앞의 순한 고요를 방해하지 않는 노래를 비로소 갖게 되었다.
-신영선 (기린그림)
작사/작곡/편곡/피아노/프로그래밍: 이원혜
노래: 이원혜 (L), 한소리 (하얀 눈처럼)
베이스 (하얀 눈처럼): 이희범
녹음/믹싱/마스터링: 사운드솔루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