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아닌 어딘가로, 변화한 혹은 고유한 ‘나’와 떠나는 바캉스.
드림게이즈 밴드 '티어파크(Tierpark)'의 정규 3집 [Vacance]
여름과 겨울로 나누어 자체 발표했던 EP 두 장을 엮어 8곡 수록 정규앨범으로 발매.
어린아이의 심상과 시선으로 바라보는 성장에 대한 노래 ‘Kinder’와 잔잔히 어른거리며 빛나던 순간을 그린 ‘Shimmer’ 등 수록.
여기가 아닌 어딘가로 간다면 달라질까?
지금이 아닌 그때의 시간으로 돌아간다면 달라질까?
해가 바뀌고 시간이 지나면 나는 달라질까?
수 세기가 지난 후에 내가 남는다면, 나는 무엇으로 남아 기억될까?
티어파크의 새 앨범 [Vacance]는 변화에 대한, 혹은 그것의 부재에 대한, 그럼에도 돌아보고 곱씹어보며 바라는, 버릴 수 없는 ‘나’에 대한 열망을 그린다. ‘Vacance’, ‘휴가’라는 단어가 주는 어떤 기대감, 하지만 ‘휴가는 끝났네 너와 함께’ (여름, 부름) 라는 가사처럼, 어떤 기억으로 인해 누군가의 휴가는 영영 소멸될 수도 있을 것이며 누군가의 휴가는 어디에서나 가질 수도, 어디를 가도 가질 수 없기도 한 어떤 것일 것이다.
전작 [두 세계가 만나는 순간]이 ‘관계’ 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이번 앨범에서 밴드는 좀 더 개인적이 되어 서사적으로, 또 음악적으로 한층 더 깊이 자신을 들여다본다. 여러모로 자신들의 색채와 오리지널리티를 고민한 흔적이 느껴지는 것은 비단 이펙터 질감 머금은 기타 소리와 서정적인 보컬 멜로디로 대표되는 그들의 슬로우템포 트랙 중 한 곡인 ‘Dinosaur Feather’의 가사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얼마만큼의 내가 그대로 인가
얼마만큼의 내가 진화했는가
그 중에 얼마만큼의 내가
나라고 부를 수 있는 어떤 것일까”
과연 그들의 사운드는 진화했다. 티어파크적인 요소들-이를테면 매쓰록 적인 박자, 재즈 스타일 드럼, 팝적인 멜로디, 몽환적 사운드 스케이프- 등은 여전히 견고하되 곡을 풀어내는 전개는 더 예측 불가능해졌고 동시에 완결력이 생겼다. 어디로 펼쳐질지 종잡을 수 없는 그들 특유의 곡 구성 방식은 타이틀곡 ‘Kinder’에서 특히 돋보이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이 반복되는 구간이 전혀 없는 선형적 구성이 그 한 예이다. 이 구성은 밴드가 소개 하듯 쉴 새 없이 뻗어 나가는 아이의 심상들이 표현된 것이라고 하며, 그만큼 천진하면서도 심오한 아이의 시선과 에너지가 그대로 전달된다.
‘Kinder’를 포함한 앨범 초반부의 곡들이 티어파크의 전작들에 비해 전체적으로 밝고 아기자기한 느낌이라면, ‘고유한 고요’로 여는 앨범 후반부의 세 곡에서는 밴드 초기에 보여주었던 처연한 분위기가 감돈다. 기타의 풍부한 공간감 속에 드럼이 심벌로 만들어 내는 질감과 나지막한 보컬로 인트로를 열고 곡을 진행하며 서서히 층을 쌓은 후 격렬한 엔딩으로 치닫는 진행은 티어파크를 지켜봐 온 청자라면 반가울 익숙한 기법일 것이다. 특히 마지막 트랙 ‘Shimmer’에서는 곡의 각 파트들이 세련되고 유연하게 전개되다가 종결부에 이르러 두대의 기타와 베이스가 함께 수려한 화음을 만들어내며 축제의 마지막을 장식하듯 [Vacance]의 여정에 마침표를 찍는다.
팀의 보컬로서 전곡을 작사한 김세희는 ‘고유한 고요’의 모티브가 ‘Vacance’의 다른 의미인 ‘텅 빈 상태’에 대한 이야기라고 한다. 외부로부터 필요함을 강요받지 않고 온전히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되어 자신만의 색채와 명암을 드러낼 수 있게 되는 순간들이 진정한 바캉스가 아닐까 라고.
2012년 결성 이후 6년 동안 4명의 같은 멤버들이 이로써 3장의 정규앨범을 함께 만들었다는 그들. 그들다움을 잃지 않으며 진화한 티어파크의 고유한 [Vacance]를 함께 감상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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