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ve 5.5
최근 몇 년간, 한국 대중음악은 상상 할 수 없는 발전을 이뤄왔고, 어느 시점부터 한류라는 컨텐츠로 해외 무대에서의 활약상도 심심치 않게 그 위상을 절감하게 하고 있다.
다만 개인적인 아쉬움이 있다면 위 현상들은 대중음악 전반적인 관심과 사랑이라는 측면보다는 아이돌과 걸그룹 음악으로 한정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많은 뮤지션들은 그들만의 길을 걸었고, 한국 재즈계도 외국 뮤지션에 못지않은 유수의 뮤지션을 발굴해 냈다.
그간 참 긴 시간이 흘렀다는 게 막연한 느낌이 아닌 현실이 된 지금, 필자가 Wave의 연주를 처음 들었던 건 어느덧 20여 년 전의 일이 되어버렸다.
K-Fusion이란 장르를 만들어 냈을 만큼 이들의 등장은 신선했고, 흔치않게 재즈계에서는 젊은 세대가 주축이 되는 팬클럽이 자생하여 그들의 인기를 대변했다.
그런 Wave가 돌아온다.
그 간의 미발표 곡들로 5.5집이 발매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꽤나 짠한 감흥이 일었던 건 부정 할 수가 없었다.
한국 재즈계에서 20여 년 동안 단일 이름으로 밴드를 유지한다는 건 팀의 리더이자, 색소포니스트인 김용수의 굳은 신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굳은 신념... 참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이보다 더 그의 아집에 가까운 헌신을 표현 할 단어가 있을까?
이번 앨범은 개인적으로 Wave의 사운드를 가장 잘 들려주는 멜로디와 편곡으로 이뤄졌다는 느낌이 든다.
이상훈의 리드믹컬한 드럼으로 시작하여 다양한 유니즌을 들려주는 What Color is it은 마지막 부분에서 Swing으로의 리듬변화로 흥미로운 반전을 들려준다.
Just One Last를 들으며 역시... 라는 생각이 들만큼 색소포니스트 김용수의 멜로딕한 연주와 발라드의 표본을 보여주는 알토 색소폰 톤이 빛을 발한다.
전형적인 Wave 스타일의 Fusion Jazz 넘버인 Triplet은 경쾌함의 단초가 되는 최원혁의 베이스 연주가 단연 돋보이고, 감성적인 이명환의 건반으로 시작되는 발라드 Memories에서 김용수는 Just One Last와는 또 다른 매력의 테너 색소폰 사운드를 들려준다.
도입부의 그루비한 드럼과 의도된 언발란스한 색소폰 리듬이 백미인 Into the Groovy에서 한현창의 기타 솔로는 독특한 손맛의 몽환적인 사운드로 묘하게 긴장감을 준다.
기타의 멜로디로 시작하는 Have a Sweet Day는 흡사 Spyro Gyra가 연상되는 상쾌한 곡으로 기타, 색소폰, 건반으로 이어지는 절제된 솔로로 Wave가 지니고 있는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한다.
90년대 트랜디 드라마의 주제곡을 듣는 듯한 Cooling Wave는 상큼한 락 비트를 바탕으로 자칫 올드해 질 수 있는 분위기를 다양한 섹션과 드럼 솔로를 통해 상쾌함으로 바꿔주는 주는 곡이다.
편안한 분위기의 Easy Life는 서정적인 톤 컬러의 색소폰과 감각적인 건반 사운드로 꽤나 빠져나오기 힘든 여향을 남기고, 이상훈의 경쾌한 터치감과 묵직하면서도 결코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 베이시스트 최원혁의 연주가 돋보이는 Another Confusion은 밴드에서 드럼과 베이스 기타의 중요성을 몸소 연주로 들려주고 있다.
자극적이고 강렬한 한현창의 기타 리프로 시작되는 Way Out은 이명환의 간결하면서도 쾌활하게 들리는 오르간 사운드로 음반의 마지막을 마무리한다.
이 앨범을 듣고 있으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20년 전, 패기와 열정으로 뭉쳐진 Wave가 있었다면, 어느덧 시간은 이들을 한국 대중음악의 중심에 위치 시켰다. 연주자와 후학 양성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이 멤버들의 이름을 대중음악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다지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시간의 흐름이야 거스를 수 없지만, 어느덧 중년이 되어서도 그 자리를 굳건히 지켜주고 있는 이들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글 허세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