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희은' [당신의 꿈]
시대를 앞서간 음악장르나 실험이 당대에 대중적 조명을 받은 사례는 별로 없다. 이는 대중음악 뿐 아니라 다른 예술 분야에서도 공통된 현상이다. 그래서 장르를 불문하고 동시대의 트렌드에서 빗겨난 시대를 앞선 선구적 시도는 당대에는 혹평과 무관심으로 방치되기 일쑤다. 경험한 적이 없는 생소한 실험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수 십 년의 세월이 필요할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당대에 평가받지 못했다 해도 가치 있는 작업은 후대에 의해서 반듯이 재평가되고 재조명된다는 점이다.
지금은 '아트 록'이라 평가받으며 화려한 조명을 받고 있는 프로그레시브 록은 클래식과 록의 접목을 시도한 일종의 크로스오버 음악이다. 처음 시도되었던 60-70년대 당시엔 서구에서도 '클래식도 록도 아닌 어정쩡한 음악'으로 평가절하 되었지만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애호가들이 급증하고 있는 장르다. 그런 점에서 1972년 신중현과 양희은이 함께 한 음악작업은 시사적이다. 두 사람이 함께 음악실험을 했다는 사실을 아는 대중은 그리 많지 않다. 록과 포크는 여러모로 이질적인 질감의 음악장르이기 때문이다.
혹 사이키데릭 포크라는 장르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지미 헨드릭스로 대변되는 환각적인 사이키델릭 록과 맑은 감성의 포크가 합체된다면 어떤 색감의 사운드가 될까? 사이키델릭 포크는 포괄적 개념인 포크 록 보다 더 전문적인 장르다. 1960년대 말부터 시작된 이 장르는 영미권에서는 활발하게 실험되었던 진보적 음악장르였지만 국내에서는 이 앨범 이전에 유례를 찾기가 힘들다. 그런 점에서 양희은과 신중현은 국내 최초로 사이키델릭 포크음악을 시도했던 선구자들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두 사람의 협업 역시 국내에서는 생소하고 시대를 앞서간 음악이었기에 발매 당시에는 아무런 조명을 받지 못했다. 아니다. 오직 군사정권에 의해 방송금지라는 가혹한 대접을 받긴 했다.
'양희은'의 디스코그라피에는 진귀한 음반들이 즐비하다. 그 중에서 가장 화려한 문양으로 디자인된 진귀한 앨범이 45년 만에 LP버전으로 재발매되었다. 1972년 유니버샬레코드에서 초반이 공개된 신중현 작품 '당신의 꿈'등이 수록된 바로 이 앨범이다. 양희은의 칼라 공연사진 주위를 에워싼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오색 꽃모양의 재킷 디자인과 음악을 담은 이 앨범은 한국 최초의 사이키 포크 앨범이란 역사성을 지니고 있다.
총 10곡이 수록된 이 음반은 그동안 한국대중음악의 대표적인 희귀음반 중 하나로 회자되어 왔다. 사이키델릭 포크의 진수는 1면에 담겨있다. 타이틀곡 "당신의 꿈"을 비롯해 "풀들의 이야기", "길", "나도 몰래", "고운 마음" 등 5곡은 모두 '신중현'의 창작곡들이다. 대중에게 알려지지도 못하고 금지의 멍에를 쓰고 봉인되었던 이 노래들은 몽환적인 신중현의 사이키델릭 사운드가 '양희은'의 맑은 목소리와 만나 어떻게 화학작용 했는지를 들려준다. 한마디로 환상적이다. 2면은 조동진의 명곡 "작은배", 한대수의 대표곡 "행복의 나라", 서유석의 "하늘", "세노야"를 작곡한 서울음대 작곡과 출신 '김광희'의 "빈자리"와 "가난한 마음" 같은 70년대의 전설적인 포크 명곡들로 채워져 있다.
사실 신중현사단 여가수들의 노래를 들어보면 창법이 비슷비슷하다. 신중현이 자신이 관리한 모든 여가수에게 창법지도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앨범에서 '양희은'의 창법엔 신중현 특유의 색깔이 찾기 어렵다. '신중현'은 맑은 음색의 '양희은' 창법 원형질에 손을 대지 않았다. 그 결과, 이 앨범은 기존에 발표된 '신중현' 특유의 환각적인 사이키델릭 사운드와 창법과는 차별되는 맑고 투명한 감성의 새로운 사이키 포크 사운드를 구현하고 있다.
이 앨범에는 흥미로운 2곡을 들어있다. 먼저 한대수의 대표곡이자 한국 포크를 대표하는 명곡으로 평가받는 '행복의 나라'가 최초로 수록한 음반이라는 점은 이 앨범에 의미심장한 역사성을 부여한다. 1968년에 귀국한 한대수가 이미 무대에서 노래를 발표했지만 양희은이 음반으로 취입하면서 이 노래는 폭넓은 대중에게 알려졌다. 또한 한대수는 이 노래를 통해 가수보다는 작곡가로 인지도를 먼저 획득했다. 정작 한대수 자신은 군복무를 마친 1974년에야 뒤늦게 '행복의 나라로'를 음반으로 취입했다. 또한 한국 사이키델릭의 여제로 평가받는 김정미의 노래로 널리 알려져 있는 '나도 몰래'도 실은 그녀보다 양희은이 1년 먼저 취입한 오리지널 가수임을 이 앨범은 증명한다.
저 유명한 킹박 즉 킹레코드 박성배사장은 한국 록과 포크 음반을 거론할 때 반듯이 언급해야 될 중요 인물이다. 그는 양희은의 데뷔곡 '아침이슬'부터 대부분의 초기 앨범들을 제작했다. 신중현도 양희은과 마찬가지다. 세 사람의 만남은 그들 개인적으로는 악연일 수도 있지만 무수한 명반들을 품게 된 한국대중음악으로서는 축복이었다. 당시로서는 생소했던 사이키델릭 포크 곡들을 담고 있는 이 앨범은 발매 당시에 전혀 대중적 조명을 받질 못하고 사장되었다. 사실 어느 제작자가 팔리지 않을 음반에 거액을 투자할 수 있겠는가?! 킹박은 이제까지 국내 대중가요계에 없던 새로운 음악적 실험에 선뜻 제작비를 투자한 제작자였다. 비록 뮤지션들과는 정산과정에서 갈등이 있긴 했지만 그의 과감한 기획이 있었기에 한국 최초의 사이키 포크 앨범을 비롯한 무수한 걸작들의 탄생했다는 점은 부인하기 힘들다.
전성기 시절에 시도한 두 사람의 실험적이고 선구적인 음악이 담겨 있는 이 앨범은 재평가를 받을 가치가 충분하다. 록과 포크를 결합하는 신중현의 야심찬 프로젝트는 양희은에 이어 서유석의 앨범 발매로 이어졌는데 두 음반은 2003년 CD로 복각된 적이 있다. 45년 만에 금지의 봉인을 푼 신중현-양희은의 한국 최초의 사이키델릭 포크 사운드가 디지털시대를 살아가는 지금의 대중에게 어떤 느낌으로 수용될지 궁금해진다. /글=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한국대중가요연구소 대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