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STAGE. 베이스로 완성되는 음악
한 사람의 음악가는 어떻게 완성되는 것일까. 번개 같은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무심하게 듣던 음악이 독감처럼 엄습해 와서 꼼짝할 수 없게 만든 순간. 음악에 의해 감전되어버린 순간. 온몸에 찌릿찌릿 전기가 오르도록 음악이 내리친 순간. 그리고도 음악의 직류와 교류가 온몸에 고스란히 남은 순간. 그래서 세상이 음악을 중심으로 재구성되어버린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어디 가든 음악부터 들리고, 음악에 따라 공기가 달라지고, 음악을 듣지 않고,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순간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물론 늘 극적인 순간이 단숨에 음악가를 만들지는 않는다. 가랑비에 옷이 젖듯 천천히 음악으로 빨려 들어갔을 수도 있다. 어렸을 때부터 항상 음악이 들렸고, 당연히 음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꿈에 부풀어 시작했지만 같은 연습을 수도 없이 되풀이하기도 했을 것이다. 좌절하기도 했을 것이며 그만두고 싶기도 했을 것이다. 지금 우리 앞에서 음악을 들려주는 모든 뮤지션들은 그 과정을 스스로 이겨내고 길을 찾은 이들이다. 그렇다면 '김영후 퀸텟'의 '김영후'는 어느 쪽일까. '전영세 트리오'와 '이영경 트리오'의 베이스 연주자로 참여하다가 뉴욕으로 건너가 유학을 하고, 미국의 재즈 클럽에서 활동한 젊은 재즈 뮤지션 김영후. 한국으로 돌아와 2장의 리더작을 발표하고, 모 TV 프로그램에서 [2015 한국 재즈의 새 얼굴]로 소개되었다가 1년 뒤에는 자신의 이름으로 공연을 한 김영후. 이제는 네이버 온스테이지까지 도착한 그와 젊은 동료들의 협연은 한 사람의 음악가가 완성되는 속도와 꾸준한 흐름의 순간을 잠시 멈추고 보여준다. 아직도 진행형인 '김영후'의 길에 서 있는 그 자신을.
2014년에 첫 리더작 [Dancing On The Floor]를 발표하고, 2년 뒤에 두 번째 음반 [You Will Be Free If You Truly Wish To Be]를 발표한 '김영후'의 포지션은 베이시스트이다. 밴드에서 음악의 코드 기본음을 연주하면서 동시에 리듬을 조절하는 베이스는 음악의 주춧돌이자 명실상부한 리더다. 그러나 대개 낮은 음을 연주하면서 음악의 기저에 묻혀 도드라지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베이스에 주목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하지만 베이스가 있을 때와 없을 때 음악의 무게와 깊이는 완전히 달라진다. 특히 뛰어난 베이스 연주자 리더들은 대개 섣불리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은근함으로 잠재해있으면서 음악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설계하면서 이끈다. 그렇다고 오직 뒤에서 큰 그림만 그리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팀의 리더이자 실질적인 지휘자라는 것을 애써 보여주지 않아도 좋을 때, 밴드의 일원으로 베이스 연주자는 자신의 몫을 충분히 다한다. '김영후' 역시 자신이 직접 곡을 쓰는 작곡가로서 자신이 그린 그림 위에서 한 사람의 연주자로 기존의 리듬을 순식간에 비틀고 조절하면서 오직 베이스만이 선사할 수 있는 쾌감을 안겨준다.
'김영후'가 이끄는 '김영후 퀸텟'은 온스테이지에서 1집 수록곡 2곡과 2집 수록곡 한 곡을 선보이고 있다. 세 곡을 일관되게 관통하는 미덕은 인상적인 멜로디와 세련되고 지적인 사운드, 그리고 자유분방한 리듬의 인터플레이이다. 노래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재즈 연주가 생경할 수 있음에도 김영후 퀸텟이 연주하는 곡은 선명한 멜로디를 반복하고 변주하면서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게 만든다. '거울 속의 미로'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Maze In The Mirror"에서 '김영후 퀸텟'은 신비로운 분위기의 멜로디를 색소폰과 플롯을 중심으로 우아하고 화려하게 이어나가다가 피아노와 콘트라베이스의 즉흥연주로 혼곤하게 변주한다. 이때 '김영후'는 자신의 고유 권한처럼 부여된 리듬을 쪼개고 당기고 늘리면서 멜로디의 미감까지 풍성하게 확장한다. 그 덕분에 뒤를 잇는 플롯과 색소폰의 즉흥연주는 더욱 농염해진다. 급기야 서수진의 드럼으로 이어진 앙상블은 리듬의 변화만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불꽃 튀는 순간을 보여주면서 5분 30초 남짓한 곡에서 경험할 수 있는 음악적 쾌감을 거의 모두 선사한다.
다른 곡에서도 우리가 흔히 재즈적이라고 말하는 스윙감과 끈끈함 혹은 우아함과 자유로움까지를 아우르는 '김영후 퀸텟'의 음악은 선명하게 아름답고 현대적이며 보편적인 동시에 화려하고 정교하면서도 여유롭다. 강화군의 한 공장에서 촬영된 '김영후 퀸텟'의 온스테이지는 그대로 노출된 흙바닥의 단순하고 투박한 빛깔 위에서 최소한의 빛으로 연주를 수행한다. 음악과 닮은 무심함이 오히려 음악을 돋보이게 하는 순간, '김영후'의 기록 하나가 더해졌다. '김영후'가 '음악인 김영후'로 조금 더 완성되는 순간의 기록. 베이스의 존재 이유를 보여주는 순간의 기록. 한국 재즈의 젊은 뮤지션들 역시 어디까지 왔는지를 보여주는 순간의 기록.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