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세적인 혀와 아름다운 눈
팝 록 일렉트로닉의 독보적인 만남, '카프카' [Asura]
"혀에서 비눗방울이 터지는 것 같아." 함께 사는 여인, 그러니까 어린 딸이 춘천 어느 식당에서 탄산음료 (환타)를 처음 맛보고서 너무 일찍 먹인 건 아닌가 싶어 다소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고 있던 아빠를 바라보며 들려준 감상평은 이러했다. 이와 거의 같은 대사가 영화 '로드 (Road)'에도 등장한다. 인류가 사라지다시피 한 시대에 우연히 탄산음료 (이번엔 콜라)를 시음한 주인공의 아들도 이렇게 말했다. 탄산음료의 특징과 낯설면서 흥미로운 대상을 이보다 적절히 표현한 묘사가 있을까. 만약 국내외의 진취적인 대중음악을 어느 정도 경험한 누군가가 '카프카 (K.AFKA)'의 음악을 만나는 행운을 누리게 된다면 유사한 감흥을 갖게 될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팝 센스와 마니아 타입을 가장, 그것도 극도로 잘 조화시킨 '카프카'가 4년 만에 발표한 정규앨범 [Asura](2017)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예상한다. 이 앨범은 EP [The Most Beautiful Thing](2010)과 [The Human Psyche](2013)로부터 매듭을 찾을 수 있는데, 굳이 다른 대상들을 거명하여 설명해야 한다면, 전성기의 '타입 오 네거티브 (Type O Negative)'와 좀 더 헤비한 '포티스헤드 (Portishead)', 혹은 '미니스트리 (Ministry)'와 '나인 인치 네일스 (Nine Inch Nails)'의 사운드 실험과 비교해볼 부분이 있다고 써도 크게 원성을 사진 않을 것 같다 (물론 '카프카'는 이들을 그다지 의식하지 않는다). 비교대상 없이 말하면 '팝과 록 그리고 일렉트로닉의 독보적인 만남'이라 할 수 있다.
고스와 메탈, 그리고 저만치 앞서나간 록의 흐름이 강온의 교차와 일렉트로닉 리프/루프의 율동 속에 파도치는 "Killing Myself", "Escape"의 압도하는 분위기에서부터 "Fairy Wind"의 멜로디, 그리고 강한 리듬과 침잠하는 무드가 조화로운 "Grave", "Lost"에 이르기까지 '카프카'가 그리는 [아수라]의 세계는 제목들처럼 어둡지만 소리는 다채롭다. LP 노이즈로 시작하여 스트링이 가세하는 "Asura"는 '카프카'의 음악이야말로 스타일 강한 영화음악에 적합하다는 판단을 더욱 굳히게 하고, 가장 긴 트랙인 "Never-Ending" 또한 멜로디 센스와 곡의 구성에 있어서 처연하게 아름다운 드라마를 연출한다. 어쩌면 이들의 앨범 자체가 한편의 영화를 그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염세적인 혀와 아름다운 눈'이 공존한다.
TV와 오토바이가 세상에 나온 지 한참이 지났건만 라디오와 자전거는 여전히 건재하다. 음악은 어떨까. 아무리 새로운 장비와 기술을 활용하고 신조류를 끌어와도 노래, 그러니까 노랫말이 있든 없든 우리가 '노래'라 부르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운율과 가락, 소리와 감성이 없다면 별다른 감동을 남기지 못한다. '카프카'는 꽤 긴 시간 동안 작품 활동을 하는 내내 그 본질을 잊지 않았다. 그러니 이제 "혀에서 터지는 비눗방울"을 맛 본 누군가에게 남은 일은 '카프카'가 발표한 모든 앨범들의 리뷰를 쓰고야 만, 하지만 어떤 면에선 무척 게으른 이 사람이 여태 짚어내지 못한 매력을 찾아내는 것이다. 비판적 감상은 흠 찾기가 아니라 보탬거리 찾기니까.
글_나도원(음악평론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