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만 자라버린 성숙한 소년들이 뿜는 소년미, '넌 아만다' EP [열대야] -
애니메이션 감독 '신카이 마코토'의 '초속 5cm'의 영상미는 뜬금없는 디테일에서 나온다. 눈길이 짧게 스쳐 지나갈 법한 기차 난간 같은 것도 세밀하고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그런 디테일이 아련한 스토리와 어우러져 인상적인 감수성을 만들어낸다. '넌 아만다'의 EP [열대야]를 관통하는 것은 이러한 짧은 시선에 대한 디테일. 그리고 아련함이다. 더위로 잠 못 이루는 열대야의 달라붙은 티셔츠. 이글거리는 아스팔트, 자동차의 테일 램프등 지나칠 법한 경관에 시선을 주며 과연 더워서 잠을 못 이루는 것인지, 떨쳐내지 못한 어떤 기억들로 잠을 못 이루는 것인지 곱씹게 하는 아련함을 던진다.
이들이 2015년에 발매한 두 장의 싱글을 통해 우리는 익숙한 사운드를 구사하는 새로운 팀을 만났다. 모던 록, 혹은 이를 약간 더 세분화하여 기타팝이라는 장르 안에서 기대할 수 있는 '팝적이고 쉬운 멜로디', '징글쟁글한 기타'가 어우러지는 섬세하고 서정적인 음악이 그것이다. 심지어 근래 이 쪽에 속하는 한국 밴드들은 신구를 막론하고 엄청나게 새로운 작업물을 쏟아내고 있다. 가히 '한국 모던록의 제 2의 전성기'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제 1의 전성기는 역시 '언니네 이발관', '델리스파이스', '브로콜리 너마저', '9와 숫자들' 등으로 이어지는 대형 밴드들이 등장했던 2000년대 초 중반) 한동안은 어쿠스틱 기타와 젬베가 지배했고, 또 한동안은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곁들인 댄서블한 밴드들이 점령했던 홍대의 유행이 돌고 돌아 다시 모던 록/기타팝으로 돌아오는 분위기다.
EP [열대야]는 기존의 싱글들에서 한층 성숙하여, '넌 아만다'의 정체성을 어느 정도 잡아간 것으로 보인다. 전작들이 감정을 되도록 숨기고 담담하게 표현했다면, 이번에는 보다 감정 표현에 적극적이다. 타이틀 곡 "열대야"와 "서로의 서로"에서 보여주는 타이트한 구성. 그리고 터져 나오는 기타 트레몰로 연주와 상승 무드의 코드진행 등은 이전에 없던 것들이다. 타이틀 곡임에도 불구하고 왜 "열대야"가 마지막 트랙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넌 아만다'의 그 동안의 성과이다. (본의 아니게 앨범의 클라이막스를 스포일 해버렸지만, 내용을 알고 봐도 재미있는 영화처럼 미리 기대하며 들어도 아름다운 지점이다.) 이러한 감정 뿜어냄은 그 동안 일관적이었던 '넌 아만다'의 '사춘기 소년 같은 감수성' (소년, 대2병 등)을 오히려 증폭시켜주는 결과를 낳았다. 여전히 소년 냄새가 나는 가사들에서 예민한 속내를 참다 참다 연주로 터트려 낸 느낌. 속내를 돌려 말해낼 줄 아는 성숙함이 엿보인다. 이런 맛을 내기 위해 의도된 섬세한 트랙 배치도 돋보인다.
첫 트랙 "열여섯"의 첫 가사는 "우리에겐 푸른 하늘이 잿빛으로 보이나 봐요"이고 이것은 이들의 관점에서 앨범을 감상할 수 있도록 가이드 해 준다. 묵직한 가사만큼이나 연주가 더 감정의 다이나믹을 살려내지만 보컬 김석우의 밝은 듯 밝지 않고, 편한 듯 편하지 않은 목소리는 싱글의 그것과 같고 그래서 매력적이다. 두 번째 트랙 "밤걸음"은 이들의 첫 싱글 [소년]에 실려 사랑 받았던 곡이며 새로운 연주를 녹음하여 실었다. 세 번째 트랙 "고양이"는 밤걸음과 더불어 이들의 경쾌함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애정이 가는 노래일 것이다. 제목이 "고양이"이므로 히트예감. "너도 손에 닿는 건 모두 다 재미없고 반짝이는 건 저 먼 곳에 있니?" 네 번째 트랙 "서로의 서로"와 타이틀이자 마지막 트랙 "열대야"는 본인들의 음악 방향성을 확실히 잡고 작업한 느낌의 트랙들이다. 이러한 방향이라면 두 팔 벌려 환영하고 싶다. 역시나 일상을 훑는 가사들. 한 편의 순정만화 같은 이야기들. 모든 트랙들이 애정이 가지만 특히 이 두 트랙은 강력 추천을 하는 바이다.
오픈 마이크 무대에서 공연하다가 레이블에 발탁되고 싱글 발매와 공연으로 팬을 얻어간 뒤, 보다 긴 호흡의 EP 발매라는 건강한 성장을 계속하고 있는 '넌 아만다'의 성장한 모습이 [열대야]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대학에서 만난 친구들로 이루어진 밴드라 그런지 악곡과 가사가 끈끈하게 이어져 있다. 서로의 인식에 대한 믿음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넌 아만다'의 이번 EP [열대야]는 잠 오지 않는 여름 밤 감수성을 터트리기에 더없이 좋은 음반이 될 것이다.
(이재훈, 공연장/펍 사운드마인드 대표 | 밴드 꿈에 카메라를 가져올걸 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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