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태양을 머리 위에 두고 세상에서 가장 진한 어둠 속을 기어야 했다.
내가 당신을 바라보는 시간 만큼 당신도 나를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내게 아직까지 도달하지 않은 당신의 응답이 아직까지 분주히 우주를 횡단하고 있을지 모른다고, 혹여나 그렇지 않더라도 끝내 당신은 나의 시선에 답하여 당신의 눈부신 원형을 내게도 드러내 보일 것이라고 믿었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진창과 같다. 당신이 나로부터 한걸음 멀어지면 나는 당신을 따라 한 걸음 더 내딛으려고 발버둥치다가 더 깊은 수렁 속으로 내려앉는다. 내가 아래를 향할수록 당신은 더 멀어지고, 당신과 나의 관계는 내가 당신을 본 적이 없던 때의 그것보다도 더 희미해지고 있었다. 당신이 돌아오지 않음으로써 나는 세상의 가장 낮은 곳으로 떨어졌으나, 이 곳에 바닥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 수렁 속에서 나는 어둠을 발견하였다. 어둠은 밤이 아니었다. 어둠은 빛이 없는 것이었고, 아무것도 없는 것이었으며, 오직 나만이 존재하는 것이었다. 나는 태양을 머리 위에 두고 세상에서 가장 진한 어둠 속을 기어야 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였기에 밤이 두렵지 않았다. 당신은 밤을 이끌고 사라졌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당신의 변치 않는 원점이고, 당신은 아직도 내 마음 안의 한 공간에 거주하고 있다. 그 공간은 내가 당신의 원형을 직시할 때만 비로소 실재할 수 있다. 내가 당신을 바라봄으로써 당신과 내가 완성되고, 당신과 나를 품은 이 세계 또한 완성되는 것이다.
당신의 부재가 찰나의 것이라면, 그 찰나가 내게 남은 시간보다 길다 할지라도 나는 기쁘게 당신을 그리워하겠다. 하지만 끝내 당신이 관찰되기를 거부한다면 나는 당신의 실존을 부정하겠다. 아마 당신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 당신의 대답을 듣지 못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