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노트(Key Note), Joelle' 「피아노와 함께하는 매주 수요 묵상」[Doers of the Word]
거울을 본다. 가만히 얼굴을 들여다본다.
내 눈썹이 떨린다. 나의 불안한 마음이 동하여 물을 길어 올린다. 끝없이 길어 올리는 마음의 물은 나의 물이 아닌 나의 욕심이다. 고민과 걱정이라는 이름으로 가장한 욕심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나의 마음과 소유하고자 하는 삶이다. 내가 소원하고 소유하고자 하는 것은 경험하지 못한 미지의 것들이다. 내가 알지 못하는 것 즉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불안해하면서도 그것을 탐한다. 무언가가 나를 옭아매고 내가 원치 않는 일들을 강요할까 두려워하면서도 왜 끝없이 파고드는가? 이러한 사고는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미지의 세계로 부터 확정되어지지 못한 나라는 사람의 존재 이유로 인해 괴로워한다. 인정과 존중으로부터 멀어진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될까봐 더욱 두려움에 쌓인다. 나를 놓치고 세상과 멀어져 질까 겁을 낸다. 그리고 화를 낸다. 정녕 이것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알 수도 없는데 나를 주인공으로 세운 욕심이 몰아세운 것이다. 쌓여만 가는 생각은 주변에 온통 물을 끼얹고 날을 세운다. 내가 이 지경까지 이른 것은 내가 거울 속 나를 보기 때문이다.
왜 나를 보는가? 거울에 비친 나를 받아들이는가? 현실에 둘러싸여 살아가며 조금은 뒤틀린 내 얼굴이 진정한 나의 아름다움이란 말인가? 웃을 때조차 어색함에 입술을 비트는 거울 속 그가 바로 나란 말인가? 불안함에 눈썹을 움직이며 입가를 파르르 떠는 나는 인간의 연약함을 붙들고 섰다.
아버지께서 정녕 나를 이렇게 창조 하셨단 말인가? 아닐 것이다. 아닌 것이다.
나를 만드신 아버지의 완전하심은 내 얼굴에 씌워진 가면이 아니라 내 마음에 새겨진 말씀으로 그 정체성을 드러낸다.
아버지를 신뢰함으로 나는 말씀으로 내 안에 계시는 아버지를 믿는다. 이러한 믿음의 단련이 나로 인내하게 한다. 세상에 따른 좋고 나쁨의 기준이 아닌 말씀에 비추인 판단의 공의는 나를 완전하게 한다. 완전한 것은 무엇인가? 내가 온전하기 위해 완전한 말, 흔들림이 없는 견고한 말씀을 내 안에 쌓는 것이다. 그리고 말씀에 의해 걸음을 옮긴다. 내가 기도하며 구하고 나아가는 그곳에 마음과 뜻을 온전히 두고 이를 믿음으로 완전하여 부족함이 모든 것을 이루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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