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의 '끈질긴 청승' - 쿨함과 핫함의 한복판에서 묵묵히 전하는 '따뜻함'
'9'의[문학소년]
2015년 7월 '9와 숫자들'의 리더 '9(본명 송재경)'가 노래에 빠진 지 20년 만에 솔로 데뷔를 선언했다. 열렬한 팬으로 시작하여 제작자 겸 뮤지션으로 한국 인디 20년 역사를 오롯이 함께해 온 '인디씬의 숨은 진주'. 포크, 신스팝, 모던록, 싸이키델릭 등 폭넓은 음악세계를 탐험한 끝에 그가 현재 활동하고 있는 밴드 '9와 숫자들'의 음악과는 다른 단순함 속에 깊이와 완성도를 녹여낸 오직 '9'만의 음악을 마침내 탄생시켰다.
풍성한 어쿠스틱 사운드와 친근한 가사의 편안한 곡이지만, 탄탄한 음악적 기반과 오랜 기간의 성찰로 얻어진 9의 세계관이 담긴 첫 싱글 [문학소년]을 시작으로 연말까지 몇 차례의 싱글을 소개한 뒤 내년 초 정규 앨범을 발표할 예정이다.
'9'의 진짜 음악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여기 한 남자가 있다. 가벼운 태도와 무심한 제스쳐가 멋진 것으로 여겨지는 시절,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깊이 생각하고 진지하게 말하는 사람이다. 너도나도 유행처럼 썸을 타고 있을 때, 세상 진귀한 것 모두 구해 그대 앞에 바치겠다는 맹세를 하고, 막연한 힐링과 멘토들이 가득한 세상에서, 완벽함은 없다 해도 부족함이 더 싫다며 유예된 꿈들을 읊조리는 사람이다. 나는 지금 밴드 '9와 숫자들'의 싱어송라이터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2000년, 20세기가 끝나갈 즈음 한 고등학생이 결성한 밴드 '그림자궁전'이 나타난다. 이 세상 것이 아닌 것 같은 화학작용과 우주에서 온 공주에 대한 노래를 부르고 연주하던 이 밴드는 '9와 숫자들'의 모체가 된다. 시간은 흐르고, 젊은 예술가는 원하든 원치 않든 세상과 부딪힌다. 그 시간을 통과하며 '그림자궁전'의 노래를 쓰던 한 뮤지션은 이 땅에 발을 디디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살아온, 살고 있는 이 세상과 그 속의 사람들에게 한발 더 다가선다.
그렇게 '그림자궁전'을 벗고 태어난 밴드 '9와 숫자들'. 2009년 데뷔앨범과 함께 이 밴드는 각종 매체와 평단, 그리고 팬들의 감탄과 사랑을 받아왔고, 박수갈채 속에서 두 개의 정규앨범과 두 개의 미니앨범을 발표하며 2015년 오늘에 이른다.
그 모든 노래들을 쓴 '9(본명 송재경)'가 우리 앞에 서 있다. 우리 시대 가장 아름다운 노랫말을 쓰는 작사가라는, 뒤늦은 타이틀을 이제야 받아 든 싱어송라이터이자 시대를 개의치 않는, 소위 '끈질긴 청승'을 고집해 온 한 사람이다. 한국 인디 20년 역사 속, 팬이자 지망생으로, 다시 뮤지션이자 제작자로 20년을 보내온 그의 시간이 고여 지금에 도달했다. 이제, 그가 오래 전부터 써왔던 가장 내밀한 곡들과 활동을 하며 틈틈이 써온 새로운 색깔의 노래들이 모인 솔로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책들이 '대단히 거창한 푸념일 뿐'임을 알았지만 문학소년일 수 밖에 없었던 그의 노래는 마치 음악이 아무것도 구원할 수 없음을 알지만 음악을 해올 수 밖에 없었던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듯 들린다. "세상이 궁금해서 들춰본 책장 속에서, 기대치 못한 슬픔과 고독만"을 발견했다는 노래의 제목이 [문학소년]인 것은 다분히 역설적이다. 슬프고 고독해졌지만 그는 여전히 그 책을 놓지 않았고, 그렇기에 어쩔 수 없는 문학소년이다. "네 맘이 궁금해서 건네본 한마디"가 "너무 길고 고단한 여행"이 되었다는 자조는 이 여행이 여전히 계속 되고 있기에 발화되는 말이다. 그리고 그 길고 고단한 여행은 끝날 것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큰 울림을 갖는다. 오히려, 그는 첫 싱글 [문학소년]으로 다시 한번 한마디를 건네며 긴 여행을 새로 시작한다.
삶의 여정과 사랑의 아픔이 절묘하게 교차하는 지점에서 9는 그가 언제나 그래왔듯 우리 가슴을 저미게 만드는 노랫말과 여린 목소리로 노래한다. '9와 숫자들'보다 한층 따뜻하고 무르익은 어쿠스틱 사운드가 그의 노래를 감싸며 아련한 기억을 환기시키고 우리가 놓치고 있던 것들을 지금 여기로 소환한다. [문학소년]은 '9'가 지나온 여정을 돌아보는 일기이자, 앞으로의 여정을 묵묵히 알리는 이정표이다.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노래 속 그의 표정은 덤덤하지만, 이 노래를 듣는 이들의 마음은 덤덤하기 어렵다. 잔잔한 수면에 돌이 하나 던져졌다. (2015. 7. 조미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