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로컬 씬을 이끄는 91년생 비트 뮤직 프로듀서 그레이 (Graye)의 고요한 야심작!
레퍼런스를 빌리지 않고 자신의 색으로 창조한 독창적인 콘셉트 음반
회화적인 신시사이저 사운드와 다채로운 비트로 만들어낸 보이는 비트 뮤직!
이야기는 군산에서 시작된다. 농업과 어업, 불에 탄 유흥가와 새만금, 일제시대 건물과 신시가지가 공존하는 곳. 그레이 (Graye)는 매일 같은 군산의 풍경과 클릭할 때마다 바뀌는 유튜브 속의 풍경을 동시에 바라보며 음악을 만들었다. 문제는 그걸 어떻게 들려주느냐였다. 2010년, 그레이는 군산에서 무슨 음악이냐는 친구들을 설득해 애드밸류어 (Addvaluer) 크루를 만들었다. 전문 공연장이 없어 카페나 바에서 공연을 만들고 서울에서 활동하는 음악가의 단독 공연을 열었다. 그 후 그레이는 10장이 넘는 힙합 음반을 프로듀스 혹은 참여하고 그 중 PNSB의 [Fractice]가 별 관심을 보이지 않던 서울에서 좋은 평을 받는 일도 일어났다. 멀리 LA에선 J Dilla의 [Donuts]에 영감을 받은 이들이 모여 비트 씬이라는 걸 만들고 있었다. 선뜻 춤을 추기엔 한 번 더 생각이 필요한 이 실험적인 전자 음악에 새로운 사운드를 찾는 사람들은 열광했다. 어느새 Low End Theory 클럽은 성지가 되고 Flying Lotus는 비트 씬의 영웅이 됐다. 그리고 그레이는 안성을 찾는다. 음향 공부를 하기 위해 동아방송예술대학에 입학한 그레이는 늦은 나이에 입학한 로보토미 (Lobotomy)와 동기가 된다. 유명한 헤비 리스너이자 실험적인 힙합 프로듀서인 로보토미는 적지 않은 음악적 영향을 끼쳤고 그레이는 그 중 프로듀서가 중심이 되어 새로운 실험을 펼칠 수 있는 비트 뮤직에 빠져든다. 한 학기를 마치고 그레이는 군산으로 돌아온다.
이제 서울이 등장할 차례다. 그레이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군산에서 하는 데 한계를 느낀다. 마침 2013년을 기점으로 서울에서는 전자 음악에 기반한 라이브 공연이 빈번하게 열리기 시작했고, 이 흐름을 주도하던 영기획 Young,Gifted & Wack엔 로보토미가 속해 있었다. 이를 계기로 영기획과 연을 맺은 그레이는 무키무키만만수 리믹스 콘테스트 때 100여 명의 관객 앞에 선 것을 시작으로 한 달에 한두 번씩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에 올라와 공연한다. 결정적인 순간은 매달 정기적으로 열리는 전자 음악 공연 시리즈 WATMM의 3월 공연이었다. 이날 공연에서 그레이는 단단한 사운드와 드라마틱한 전개로 그를 모르던 대부분 사람들의 기립 박수를 이끌어 낸다. 이날 공연을 본 모하비 (Mojave)는 그레이의 공연이 가장 인상적이었다며 트위터에 평을 남기도 했다. 마침 그날 공연 전에 그레이는 영기획과 [Mon] 발매를 구두계약 맺었다.
비트 뮤직은 각종 음악을 재료 삼아 자신의 사운드로 요리하는 장르다. [Mon]에 영향을 준 장르는 소울, 훵크, 부기, 재즈, 힙합, 칩튠, 웡키 비트, IDM 등이다. 여기까지는 다른 비트 뮤직과 다르지 않다. 대신 [Mon]에는 요즘 전자 음악 씬에서 유행하는 사운드 작법을 전혀 찾을 수 없다. 샘플을 잘게 잘라붙이거나 (글리치) 보컬 피치의 폭을 크게 조절하거나 (피치 쉬프트) 갑자기 bpm을 늘리지도 않으며 (스크류드) 극단적으로 각 파트의 사운드를 유기적으로 컴프레싱하지도 않는다 (사이드체인 이펙트). 그럼에도 이 음반의 소리가 미래에서 온 것으로 들리는 이유는 그레이가 창조해낸 독창적인 음악 세계에 있다. 그레이가 만들어낸 사운드는 채운다기보다 비워낸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많은 악기를 쓰지 않고 그려 놓은 테마에 따라 잘 다듬어 적재적소에 배치한 사운드는 청자에게 선명한 이미지를 들려준다. 비트는 클리셰를 따르지 않음에도 몸을 흔들게 하고 몽롱한 신시사이저 사운드는 되려 선명한 이미지를 만든다. 예측할 수 없는 구성은 롤러코스터를 탄 듯 청자를 금세 다른 풍경에 데려다 놓는다. [Mon]은 'Mon'이라는 단어로 끝나는 4곡의 연주곡과 한 곡의 보컬 곡 그리고 두 곡의 리믹스곡까지, 총 7곡으로 구성된 콘셉트 음반이다. 곡마다 테마가 있고 해당 곡을 순서대로 끝까지 들을 때 큰 테마가 들린다. 시디로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히 들으면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각 곡의 인터벌을 세밀하게 조절한 걸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음반에서 누구나 알만한 음악가의 이름은 찾을 수 없다. 대신 그레이가 좋아하고 그레이를 좋아하는 음악가들이 참여했다. 노이즈 포크 음악가 후쿠시 오요는 리믹스를 제외한 유일한 보컬 곡을 일그러진 사운드에 잘 어울리는 특유의 목소리로 장식했다. 일렉트로 팝 음악가 유카리는 "C'Mon"의 테마를 맥시멀한 사운드와 애틋한 가사로 재해석했다. IDM 듀오 다미라트는 "A'Mon"의 테마를 보존하면서 본래 사운드를 자르고 꼬고 다시 붙여 다미라트표 IDM 트랙으로 탄생시켰다. 둘의 리믹스는 단순히 보너스 트랙이 아니라 음반의 테마를 고스란히 이어가며 [Mon]의 세계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만능연주자이자 프로듀서인 션만 (Syuman)은 토크박스 연주로 용의 몸통을 한 "C'Mon"에 눈알을 그렸다. Boost Knob의 플래쉬백 (Flashback) 단순히 마스터링만 하는 게 아니라 믹싱 과정부터 그레이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으며 이 음반의 사운드를 옹골차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들은 지금 가장 앞선 음악을 만들고 있는 이들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이 그레이가 운이 좋다고 얘기한다. 서울에서 공연한 지 얼마 되지 않아 51+ 페스티벌 같은 큰 공연에 참가했다. 오랫동안 동경해온 시모 (Simo)와 무드슐라 (Mood Schula)의 공연을 클럽 케이크샵에서 보고 얼마 되지 않아 바로 같은 자리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몇 번 보지 못한 음악가들이 그레이의 팬을 자처하고 리믹스를 선물한다. 역시 많은 사람은 알고 있다. 이 모두가 운이 아니라 그레이가 아무것도 없는 군산과 연고 없는 서울에서 몸으로 부딪히며 만든 결과란 걸. [Mon]은 군산에서 LA, 안성을 거쳐 서울에 이르기까지의 다사다난한 과정이 담긴 음반이다. 그 덕분에 [Mon]은 독창적이고 선명한 세계를 가진 좋은 콘셉트 음반으로 탄생했다. 그렇다고 그레이에게 '장인'이라는 수식을 붙이거나 [Mon]에 '마스터피스' 같은 표현을 쓰고 싶진 않다. 그가 앞으로 더 큰 세계를 보여줄 거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타이틀 곡 "Gumgang River"의 주인공 금강은 전라북도 장수군에서 충청도를 지나 군산만으로 내려가는 강의 이름이다. 이 젊고 재능있는 프로듀서의 음악이 자신이 만들어내는 비트를 타고 경계를 지나 그가 바라는 바다 건너 그가 만들어내는 사운드의 풍경과 같은 우주로 뻗어 나갈 수 있길 애정을 담아 기원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