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적힌 너와 나의 페이지
눈을 감는다. 꿈은 하루를 시작하며 나를 바다로 데려간다. 햇빛을 반짝이며 졸음에 겨운 바다. 바다가 고개를 끄덕일 때마다 문득, 기억이 하얀 포말처럼 일어난다. 밀려 간 자리에 밀려 온 흔적이 고스란히 발 아래 무늬가 된다. 하늘과 바다의 빛이 온몸에 눈부시게 스며들고, 나는 작은 사각의 공간 속에서 눈을 뜬다. 만날 수 없는 둘이 만나므로 전해지던 눈부심은 흩어지고 이불 속에 웅크린 작은 체온, 짙은 구름만이 낮은 천장 아래 흘러든다. 바다는 여전히 귓가에 무늬를 그리고, 끝없이 펼쳐지던 푸른 바다의 이미지를 소리로 들려준다. 그 소리에 귀 기울이며 웅크린 마른 몸을 펼쳤을 때, 날개는 돋아나 바람이 부는 곳으로 나를 재촉한다. 꿈꾸었던 곳을 향해 날개를 움직이기 시작하자 저기, 잿빛 구름이 보인다.
창틀 아래 고여 있는 아침과 잔 속에 오도카니 채워지는 아침을 지나, 시간은 멈추고 구름이 쏟아내는 잿빛의 토로가 창을 두드린다. 아이들의 재잘거림으로 해는 지고 견딜 무게를 잃은 그네 위로 너와 내가 앉아 있는데 덜컥 내려앉은 밤 캄캄해진 사위로 너와 나의 사이, 그 간격을 볼 수 없는 어둠이 존재한다면. 꽃잎은 흐드러지게 달빛 아래 길을 나서고, 풀벌레가 말없이 달빛을 갉는 밤. 나무가 가난해질수록, 점 점 너와 나는 멀어지고 아스라이 사라지는 우리의 이야기. 빼곡하게 적힌 너와 나의 페이지가 늦봄의 꽃잎처럼 우리를 나선다. 눈을 감는다. 하루는 꿈을 시작하며 나를 바다로 데려간다. 짙은 구름의 무리와 마주하고 있는 바다. 바다가 숨을 쉴 때마다 문득, 찰나의 이야기들이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진다.꿈과 일상이 담담하게 포옹하고, 시간을 잇는다. 그 시간 속에 그리고, 우리가 있다. (글: 정명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