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그리는 비관습적 은유 싱어송라이터 김거지 미니앨범 [구두쇠]
17세기 영국에서는 '형이상학파'라는 시 사조가 유행했다. 이들은 사랑과 낭만을 이야기하는 감미롭고 상투적인 표현을 버리고 엉뚱한 심상과 비관습적인 은유로 사랑의 감정을 풀어냈다. 나침반의 두 바늘로 연인을 표현하고, 남녀의 피를 빨아 먹은 벼룩을 시의 소재로 등장시켜 에로틱한 위트를 전하기도 했다. 과거에 비해 세속적인 소재들이 시를 채웠지만, 이들의 시는 진부하고 영혼 없는 시들을 밀어내며 시대를 풍미했다.
그리고, 영혼 없는 사랑 노래 가득한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형이상학적으로 사랑을 노래하는 독특한 싱어송라이터가 등장했다. 이름부터 독특한 김거지가 그 주인공. 2011년 유재하 음악 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한 김거지는 사랑과 이별을 속삭이는 관용적인 표현들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감각으로 곡을 만들어 냈다. 목욕을 하며 떼를 밀어내는 심상으로 사랑과 이별을 풀어냈고, 고속버스 창문의 성에를 바라보며 남녀 간 사랑의 온도차를 표현했다. 김거지의 가사는 가요계에 난무하는 상투적인 상심 (傷心)의 가사들과는 패러다임 자체가 다르다. 관습적으로 음악을 만들지 않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음악세계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사운드적인 면에서 김거지의 음악은 부드럽고 슬픈 특징을 갖는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포크 사운드가 중심에 자리하고 있지만 선율 위에 얹어지는 김거지의 애절한 목소리와 악기들의 어울림은 절묘한 슬픔을 만들어 낸다. 때로는 거칠게 토해내는 씁쓸한 감정 또한 인상적이다. 순수한 소년이 제대로 뿔난 느낌이랄까? 김거지의 음악은 양면의 매력을 전한다. 예쁘고 부드러운 소리에 부담 없이 다가설 수 있어 좋고, 슬픈 사운드와 가사에 한껏 취할 수 있어 좋다.
청춘을 아끼는 구두쇠... 참신한 비유의 5 Tracks. 이번 미니앨범에는 5개의 트랙이 담겼다. 새로운 소속사에서 처음 발매하는 이번 앨범에 특히 심혈을 기울였다고 하는데, 희한하게도 녹음할 때마다 일상적이지 않은 사고들이 발생해서 고생을 했다고 한다. 대박의 조짐이 아닐까하는 조심스런 기대 속에 완성한 다섯 곡을 소개한다.
1. "때" - 따뜻한 물속에 있으면 때가 나와 참을 수 없고, 이내 밀어내려 한다는 상황을 사랑과 연관지어 노래한다. 목욕탕에서의 현상들과 사랑의 과정이 절묘하게 연결되어 신선함을 전한다. 첼로 사운드의 무거운 감성과 후반부의 폭발하는 감성까지... 곡 전개가 드라마틱하다.
2. "커플티" - 이전에 제작되어 팬들 사이에는 이미 알려져 있던 곡. 곡을 매끄럽게 다듬어 이번 앨범에 수록했다. 함께 있던 커플티에 담긴 추억을 담백하고 예쁘게 노래하고 있다.
3. "구두쇠" -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 바다로 떠나고 싶지만 바다가 너무 멀어 못 간다는 친구를 청춘을 아끼는 구두쇠라 노래한다. 마음이 이끄는 곳으로 쉽게 떠날 수조차 없는 청춘들의 현실에 아쉬움을 표한 곡인 듯.
4. "거짓말" - 김건모의 "핑계"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든 곡이다. 몸이 아프다는 거짓말로 회사에 가지 않았지만 마음이 아프니 거짓말이 아니라는 핑계를 담고 있는 곡으로, 김건모와 작곡자 김창환의 동의를 얻어 "핑계" 멜로디 일부를 차용해 곡에 담았다.
5. "성에" - 겨울날 고속버스를 타고 가다 성에 낀 창문을 보고 만든 곡으로 눈앞에서 라이브를 듣는 듯한 느낌을 내기 위해 현장음을 함께 담았다. 사랑하는 대상의 차가운 미소와 본인의 따뜻한 사랑의 온기가 부딪혀 서로의 사이에 뿌연 성에가 되어 버린다는 시적 표현이 인상적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