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기 [내 머리 속의 가시]
또 실패할까봐, 즉,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노래들이 될까봐 두려웠다. 노래를 만들지 않아도 나의 삶은 순조롭게 살아졌기에 내 욕망만 참으면 되는 일이었다. 새로운 노래들을 만들어 혼자 가지고 놀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13년이 흘렀다. 그런데 지난 가을 딸 아이가 의문을 제기했다. 왜 이제는 노래를 만들지 않느냐고. 나는 나의 아이들에게, 그리고 내가 치료하는 아이들에게 너희들이 원하는 것을 두려움 없이 찾아나서라고 가르치며 살아왔다. 그런 내가 사실은 두려워서 회피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래서 억지 춘향이식으로 용기를 냈다. 사실 사람들이 좋아하고 인정을 해주는 노래를 만들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던 것이었다. 힘들게 용기를 내었는데, 이번에는 노래가 잘 만들어지지 않았다. 내가 격동이 없는 평온하고 안정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내 머리 속을 삶에 대한 원초적인 질문들로 들쑤셔놓기 시작했다. 모래 위에 세워놓은 성과 같은 나의 삶은(누구의 삶인들 안 그러하랴?) 흔들리기 시작했고 괴로워졌다. 다시 회피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회피할 수 없게 만드는 조치로 인터넷에 블로그를 만들었다. 매일 노래 하나씩을 만들어 올리게 스스로를 강제한 것이었다. 혼자 집에서 자발적으로 공부를 하지 못 할 때 도서관에 가서 타인의 시선을 나를 가두는 틀로 만들어 공부를 하는 방법과 비슷한 것이었다.
어렵게 어렵게 억지로 하루에 한 곡씩을 만들었고, 결국 하루에 노래 하나씩을 만드는 것에 익숙해졌다. 그 결과물들이 이번 음반에 실린 곡들이다. 내 머리 속에서 가시처럼 나를 괴롭히는 것들을 풀어내려 했다. 그리고 자기복제를 하지 않으려 애썼다. 나는 가르치거나 설득하는 노래는 만들지 않으려 한다. 대중가요는 대중가요다. 나를 괴롭히는 생각과 현실들을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노래로 풀어내려 노력했고, 그렇게 하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사랑노래의 틀을 빌리는 것이었다. 만들어 놓은 노래들을 대상의 상실에서 그로부터 회복해 나오는 과정에 준하여 배치하였다. 노래들을 상실, 부정, 분노, 거래, 우울, 수긍의 순으로 배치하였다. 첫 번째 노래인 "광석이에게"는 친구이자 형제였던 광석이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 노래다. 멜로디의 테마는 광석이의 "나의 노래"에서 가져왔다. 장조를 단조로 바꾼 것인데, 아무도 이를 알아차리지 못 해서 아쉬웠다. 두 번째 노래인 "눈사람"은 흔한 실연한 사람의 노래다. 내가 흔히 하는 순응하는 착한 실연이 아니라 분노하는 실연 노래가 되게 하려 해보았다. "그냥 이대로 있겠어"는 상실의 현실을 부정하고 외면하려는 노래다. 그래서 편곡을 오히려 흥겨운 쪽으로 가보았다. Acoustic version은 가사를 좀 재미있는 쪽으로 바꾸어 보았다.
"난 살아있어"는 가장 대중적일 수 있는 발라드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기타가 잘 들어갔다. 기러기 아빠를 할 때의 심정을 대상을 상실한 남자의 심정으로 바꾸어 보았다. "살아가게 되는 걸"은 이번 음반에서 내게 가장 흡족한 노래다. 그루브가 있는 노래를 만들려 했고, 비교적 성공한 것 같다. "내 머릿속의 게임"은 복고풍의 노래다. Horn도 들어가고 화음도 많은 가스펠 분위기로 만들어보려 했다. 가사가 너무 솔직해서 좀 쑥스럽다. "원해"는 젊은 사람들이 가장 좋아할만한 노래다. 어쩌면 타이틀 곡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음반의 흐름이 너무 잘 짜여진 편곡들로 나열되어 감정의 전달이 잘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먼저 Acoustic 편곡으로 된 Version을 앞에 놓았다. 피아노 하나로 부르는 노래의 감정이 더 잘 산 것 같다. 녹음을 도와주던 젊은 사람들은 약간 보이 그룹 같은 편곡으로 된 Full Session Version을 더 선호하는데 듣는 대중들은 어떨지 모르겠다. "지혜와 용기"는 만들 때는 재미있었는데, 녹음해 놓고 보니 너무 들어간 요소들과 재료들이 많아 쉽게 질리는 노래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빠른 노래는 하나 있어야 하겠기에 넣기로 했다. "난 아직도 외로워"도 아주 마음에 들게 녹음된 노래다. 드럼이 피부에 외로움을 각인시키듯 짓누르게 편곡된 것이 아주 마음에 든다. 이 나이에 난 아직도 외롭다고 되뇌이는 것이 창피하고, 아내가 어떻게 생각할까 겁이 나기도 하지만, 난 아직도 외롭다. 이쯤 되면 안 그럴 줄 알았는데 아직도 외롭다. 마지막 곡인 "내 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해야 해"는 결국 현재의 만족스럽지 않는 나의 현실을 억지로 받아들이려 노력하는 노래다. 스스로에게 주문을 거는 것이다. 아들과 딸이 코러스를 해줘서 의미가 있는 노래다. 이렇게 곡들에 대한 설명이 끝났다. 대중의 선택만 남았다. 대중과 친한 노래를 만들려고 했는데, 대중이 원하지 않는 노래라는 것이 밝혀지면 이제 이쯤해서 대중을 상대로 노래를 만드는 것을 그만해야 할 것 같다.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