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당신이 사람들 앞에서 진지한 얼굴로 이상적인 사랑을 말해본다면, 아마 철없는 아가씨 취급을 받을 터다. 절대적인 사랑을 말한다면 바보 취급을 받을 것이다. 이상적인 것을 곧이곧대로 믿는 것만큼 순진한 게 없다. 그래, 나도 안다.
어느 날엔가, 노을은 하늘이 글썽이는 얼굴 같다고 생각했다.
붉은 하늘 아래 낮이 저물 때, 넌지시 부는 바람이 실은 남몰래 쉬는 하늘의 한숨이 아닐까. 하루의 무게는 그렇게나 무거웠으니까.
혼자 비틀대며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이게 내겐 최선이라 생각했다. 아무도 곁에 없어야만 나는 평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람은 늘 신경 쓰이는 존재고, 결국 이기적이어서 불편하다. 적막 속에 외로움을 느끼면서도 그보다 나은 것이 없어 가만히 밤에 파묻혔던 날이 여러 날이었다.
하루하루 내가 살아가는 것조차 벅찬데, 누가 누굴 사랑해 줄 수 있을까. SNS에 널린 사랑 고백들은 허세나 애정 결핍의 표출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남을 사랑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세상에 사랑이란 게 있기는 할까? 수없이 되묻던 그 날들.
그러나 솔직히 외로움과 공허에 시달릴 때마다, 나는 그리워하듯 사랑을 찾고 있었다. 뻔뻔하게도 그때는 아이가 저를 두고 간 엄마를 원망하듯이 대체 어디 있냐고, 왜 지금 곁에 없냐고, 보고 싶다고, 그립다고 보채고 있었다.
사람의 보금자리는 결국 사랑으로 향한다.
인정해야 했다. 나는 사랑을 원하고, 사랑하기 위해서는 사랑을 믿어야만 한다. 그래야 내 보금자리에 닿을 수 있다.
어딘가에 있을 내 보금자리를 이미 아는 것처럼, 마음을 기대고 노래를 부르면 조금은 더 버틸 힘이 나지 않을까.
우리는 냉소적이지 않고서는 살아가기 힘들다. 사람이 그렇게 희망을 놓아가게 되는 까닭은 사실, 희망을 안고 살려면 감수해야 하는 고통이 크기 때문이다. 사랑을 믿고 살기엔, 사랑과 반대되는 것들을 너무 많이 겪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나도 가만히 방에 웅크려, 그 괴로움을 외면하기 위해 기대들을 하나둘씩 내려놓곤 했다.
나는 사랑을 믿지 않는다. 나는 세상을 믿지 않는다. 나는 선의를 믿지 않는다. 나는 희망을 믿지 않는다. 나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 나는 추억을 믿지 않는다...
마치 꽃잎점을 치듯 기대들을 한 점 한 점 떼어내다 보면 다 진 꽃만 남아, 결국 안쓰러움이 고작인 내가 남는다.
그래서 나는 거기서 멈추지 않기로 했다.
그동안 나를 지키고 싶어서 버렸던 가치를, 나를 지키기 위해 다시 피워내기로 했다.
굳은 매듭처럼 다른 이의 손을 얽어 쥐고, 나는 이 삶을 버텨보리라고 다짐했다. 내가 사랑이라는 걸 믿어보리라. 어떻게든 그렇게 살아가 보리라. ....
![](http://i.maniadb.com/images/btn_back.gif)
![](http://i.maniadb.com/images/btn_more.gi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