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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를 아무도 사랑해 주지 않지?’
울며 던졌던 질문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왜 다들 내 곁에 있을까?’로 변했습니다. 작업 기간 중 더 이상 아무것도 필요 없다는 마음을 여러 번 느꼈어요. 이런 사람들이 나를 아껴준다면 난 분명히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거야, 하고 더 예쁜 눈으로 나를 볼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의 도움 덕분에 발매된 앨범인 만큼 더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졌으면 합니다. 특히 첫 EP를 만들던 버둥에게 들려주고 싶어요. 금세 눈물을 닦을만한 작품인데 말이죠. 매일 ‘여기야! 잘 달리고 있어 좋은 친구들도 많고!’라며 허공에 소리치는 날들입니다. 뭐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요.
1. 처음(2018.12)
첫 앨범 활동을 마치고 당연하지만 여전히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모른다 말했을 때 설명해 주는 사람과 무시하는 사람을 구분해 낼 수도 없었다. 결국 아무도 답을 줄 수 없는 내용이지만 한 번쯤은 알려달라고 떼써보고 싶었다. 원래는 보사노바나 재즈 쪽으로 풀어보려고 했는데 맘처럼 움직여주지 않는 노래였다. 결국 완전 처음 해보는 장르인 시티 팝으로 결정. 떼쓰면 이런 벌을 받나 보다. 나쁘지 않네
2. 00(2020.01)
없는 말을 지어내는 거짓말은 어려서도 잘 하지 않았지만 일어난 일에 대해 입을 다무는 쪽의 거짓말은 익숙했다. 괜찮지 않은 일에 ‘괜찮아’라 반복해서 말하는 사람 둘이 사랑을 키운다면 기존의 모양과는 많이 달라지지 않을까?
‘나 곡을 좀 잘 쓰는 거 같아’ 하고 느끼게 해준 곡이다. 알앤비 장르가 잘 어울린다는 얘기를 종종 듣기도 했고 욕심도 나서 도전했다. 녹음이 쉽지 않았지만 여러 번 들어도(내 노래지만) 곡이 수려하다.
3. 나의 모든 슬픔이(2020.06)
우리가 하는 일에 운과 별개인 일은 아무것도 없다. 유난히 운이 내 편일 때도 있지만 이렇게 나와 멀어질 수 있을까, 싶은 날도 있었다. 우리는 답할 수 없는 이야기를 아주 길게 나눴고 그 시기 그럴 수 있는 서로가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내 노래 [독립]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좋아하실만한 발라드를 한 곡 더 만들고 싶었다. 발매 전부터 사랑을 많이 받아 행복한 곡이다.
4. 그림(2020.07)
그림 같은 여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사람으로서의 많은 걸 포기하고 그림이 되려 했던 시절 그 작은 표정과 행동에서 마음을 미리 알아차릴 수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가 가득한 곡이다.
멜로디의 매력을 살리고 싶었다. 악기가 많지 않은 선에서 내가 노래를 잘 하는 쪽이 가장 적합했고, 노력 많이 했다.
5. 공주이야기(2020.07)
이번 앨범 개인적으로 가장 큰 도전을 한 곡이다. 노래를 부르지 않고 기타를 친 뒤 그 위에 멜로디를 따로 만들었다. 테마를 만들고는 드럼을 받은 뒤 곡 구성을 완성했다. 애초에 리듬을 뒤로 주는, 버둥이 이전에 하던 곡보다 익살스러운 분위기를 만들고 그에 어울리는 가사의 주제를 골랐다. 본인 의지와는 상관없이 단상에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늘 안쓰러웠다. 그들을 올렸다 내리는 군중들의 시선은 결국 무료한 일상에 재미가 필요해서 였다는 걸 가사와 리듬의 뉘앙스를 통해 전달하고 싶었다. 발매 전 가장 반응이 좋았고 내심 뿌듯한 곡이다.
6. MUSE(2019.11)
피카소의 그림 ‘도라 마르의 초상’의 주인공으로 더 유명한 사진작가 도라 마르의 이야기를 접하고 만들었다. 진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그에게서 영감을 받아 작품을 만들기보다는 사랑 속에서 더 편안하고 오래 건강한 삶을 살 수 있게 해주는 것이라고 믿는다. 내가 받은 사랑을 그랬고 내 입장에서 뮤즈는 사랑받는 사람이 아니었다.
모던 록이라는 아이디어는 순전히 프로듀서님의 아이디어였다. 예상치 못한 방향이라 생각하시는 대로 해달라고 했고 귀신같이 마음에 들었다. 천연덕스럽게 노래하기란 쉽지 않았다.
7. 씬이 버린 아이들(2020.07)
숱한 연락을 받던 사람도 잊히고, 무시당하다가도 머리 꼭대기에 오를 수 있는 게 이 직업의 매력이자 강력한 독이다. 꽤 한결같이 내 할 일을 하는 동안 주변은 다가오기도 멀어지기도 했다. 그 모습이 두렵기보다는 우스웠다. 같은 마음의 사람들이 많이 모여 동동 뛰며 부르면 좋을 구절들로 만들었다.
8. 파아란(2018.11)
아닌 척을 열심히 해도 잊혀지는 건 여전히 밤을 꼬박 새게 만들 정도로 두렵다. 떠나지 말아요, 이걸 다 줄 테니.
9. 연애(2019.12)
나는 버거운 일에 도전하고 너는 그걸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둘이 함께 함에도 버거운 일일 수 있지만 이상하게 그때만큼은 없던 용기와 힘이 생겨나는 날들. 이런 내 곁을 떠나지 않은 모든 분들을 떠올리며 불렀다.
10. 기일(2020.08)
늘 건강하실 것만 같았던 고모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마지막으로 뵈었을 때 대뜸 ‘네 공연을 봤어야 했는데.’ 하고 말씀하셨다. 예술의 의미는 내 삶의 한 부분과 닮아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 가장 도드라진다고 생각한다. 자주 가시던 절의 종소리를 넣어봤는데 마음에 드셨으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