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량생산되고, 대량소비되는 음악 속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가만히 생각을 합니다. 넘쳐나는 음악을 들으면서도, 진짜로 내 영혼과 공명하는 음악이 얼마나 되짚어 봅니다. 현실을 지우고 작은 즐거움을 주는 음악에 몸을 흔들다가도 기분이 이상해집니다.
즉각적으로 기분이 좋아지는 음악을, 사람들이 많이 찾는 음악을 만들어보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유튜브의 조회수, 음원사이트의 시청률, 음반 판매 수익이 저의 목표가 됩니다. 고등학교 때 성적표에 찍힌 그 숫자에 제 인생의 의미를 걸었던 것처럼, 제 노래의 의미도 고작 그 숫자에 종속되어버립니다. 등수 하나에 일희일비했던 것처럼 조회수와 팔로우수에 저의 기분이 달라질 것만 같습니다.
아무리 계산기를 두들겨도 이 세상에서는 카코포니가 음악을 계속해서 만들어야 할 근거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모든 공식과 모든 지표가 저에게 음악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음악을 계속 만들기로 합니다. 제 목소리를 내기로 합니다. 제가 그 길을 걸어야 함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저는 제 안의 목소리는 무시한 채, 타인들의 말에만 나를 움직이곤 했습니다. 입시 준비를 하면서는 수개월 동안 생리를 하지 않았고, 배와 팔에 참을 수 없는 두드러기가 올라오고, 위경련이 이따금씩 찾아왔습니다. 연애를 하면서는 살이 7kg가 빠지고, 먹은 것을 다 토해냈고, 밤마다 온몸에 경련이 일어 벌벌 떨었습니다. 상대방에게 언제나 미안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도 이 정도는 원래 다 견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성공한 ‘인간’과 참다운 ‘여성’이 되기 위해서 내가 파괴되는 것은 당연했기 때문일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주저앉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제 자신을 조금이라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저와 언제나 함께 있어주던 이소라의 목소리와, 짐 캐리의 얼굴과, 지브리의 이야기 덕분이었습니다. 그 위로는 너무 강렬하고 분명했기 때문에, 거의 명령처럼 저에게 찾아왔습니다. 그들과 함께하는 순간에서 만큼은 언제나 진정한 해방을 만끽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그들이 저에게 주었던 해방을 기억하며, 음악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아직 파괴되지 않는 내 안의 나와 그 작품들 사이에 길이 자라났을 때, 저는 새로운 세계로 걸어 나올 수 있었습니다.
이 작품을 준비하는 동안 한 친구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제 욕심일 순 있겠지만, 그 누구도 타인이 준 상처로 인해 죽음을 선택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은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 당신 안에 있는 힘을 믿으세요. 당신이 남을 위해 살았던 것처럼 이번에는 당신을 위해서 숨을 쉬세요. 당신이 지금 느끼고 있는 그 길이 바로 당신이 걸어야 할 길입니다. 발걸음의 무게가 무거웠던 만큼 당신의 길은 빛날 것입니다.
아, 나는 그릴 수 있어요. 그 길 위의 당신은 눈물이 날 만큼 아름다워요.
나는 당신과 함께 걸을 이 길이 기대가 됩니다. 제가 기다리고 있을게요. 제 음악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 걸을게요.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그러니 부디 용기 내 주세요. 용기를 내어 다시 살아주세요. 이 소중하고 찬란한 삶을.
김민경, 그리고 카코포니 드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