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틈없이 전개되는 음의 향연.
트리오 앨범에 이은 피아노 솔로로의 새로운 모습. 한지연의 신보음반. [Ascetic]
냉철하고 고집스런 작가주의 섬뜩할 정도의 날카로움과 가슴 저린 애틋함이 하나되어 섬세하고, 극도로 절제 된 서정성을 어필한다. 한지연은 한국에서 클래식을 전공한 후 재즈로 전향, 한국에서 연주생활을 하다 2004년 뉴욕으로 건너가 뉴욕시립대학교 Queesn College에서 석사과정을 수료하였다. Jason Moran, Ralph Alessi, Sophia Rosoff, David Berkman, Bruce Barth 에게 수학하였고, 그 후 뉴욕에서 여러 클럽에서 연주활동을 했었다. 그 이후 자라섬 재즈페스티벌과 Taichung Jazz Festival, Taiwan, EBS-Space 공감에서 연주하였다. 지난 2009년 그녀의 첫 번째 앨범인 [Francesca Han]이 미국에서 발매되었고, 베이스, 드럼의 트리오와 더불어 트럼펫과의 쿼텟 연주곡으로 구성된 2집 앨범 [Illusion]을 2012년 레이블 오디오가이에서 발매되었었다. 이제 그녀의 새로운 시도. 새 앨범[ASCETIC]으로 피아노 솔로로 즉흥의 향연을 펼쳐 보인다.
왼손과 오른손이 각각 다른 타이밍에 등장하면서도 전체의 조화가 뛰어난 "Ambidextrous"(양손잡이), 하나의 모드(mode)를 중심으로 미니멀한 진행을 보여주는 타이틀 곡 "Ascetic"(수행자), 피아노의 저음부와 고음부를 강조하면서 두 라인이 견제를 이룬 "Winter Bush", 수록곡 중 가장 소박하고 단아한 인상의 발라드 "Promenade". 그리고 그간 한지연이 천착해온 음악성을 단적으로 집약시킨 연주라 할 만한 "Why Is This Thing Called Love", 뉴욕에 머물던 시절 친구인 바이올리니스트 풍천훼이와 함께 작업한 자유 즉흥의 흐름을 유지한 보너스트랙까지. 타고난 냉철함과 동시에 가슴저린 애틋함을 그녀의 이번 새 앨범을 통해 느낄 수 있다.
- 풍천훼이 Fung Chern Hwei (Violin on Tracks 9, 10)
Fung Chern Hwei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프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중국, 말레이시아, 남인도, 그리고 서양 문화에 둘러싸여 그 방대한 음악적 영향을 받고 자랐다. 4살에 바이올린을 시작한 그는 8세에 만난 스승을 통해 바이올린 연주자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 결정을 하게 되었고, 뉴욕 아론 코플랜드 음악대학원을 수료한 후 그는 현재 뉴욕에 머물며 다양한 장르의 연주을 통해 음악적 언어와 표현의 다양성을 습득하며 경력을 쌓고 있다. 그 다양한 음악적 스타일은 서양클래식, 재즈, 중동음악, 탱고, 락, 그리고 힙합 등이 있으며 2010년에는 그의 데뷔 앨범 [From The Heart]을 발매했으며, 최근까지 뉴욕을 기반으로 둔 Sirius String Quartet에서 First violinist로 활약 중이며, 미국과 유럽 그리고 아시아에서 공연과 마스터 클래스를 하고 있다. 그가 함께한 음악인들은 유리캐인, 류이치 사카모토, 토니 베넷, 바비 맥퍼린, 스탠리 클락, 스티브 윌슨, 엘리엇 샵, 빌리 마틴, 로버타 피켓, 데이브 타일러, 이보 페럴만, 린다 오, 제니 린, 미카엘 칼슨, 다나 령, 마코토 오조네, 파키토 드리베라, 그리고 데뷔앨범을 함께 한 한지연 등이 있다.
[ASCETIC] 중에 한지연의 세 번째 리더작인 솔로 피아노 앨범 [Ascetic]이 한지연의 연주 경력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것임을 직감한다. 만약, 우리가 알 수 없는 어떤 영적인 힘이 음악인의 몸을 빌려 예술적 가치를 구현해낸다면, 그러니까 때로 그런 순간을 현실 속에서 맞닥뜨리게 된다면, 2012년 2월 24일의 한지연은 바로 그런 현상을 위해 동원된 누군가의 도구였던 셈이다. 쉽게 봄이 오진 않을 것 같던 스산한 계절의 그 오후, 나는 스튜디오를 나서며 그녀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어쩌면 상투적으로 들렸을지 모를 그 말에 얼마나 많은 의미가 내포돼 있었는지 한지연은 알고 있을까.
한지연은 다시 한국을 거점으로 삼았다. 그러나 나는, 그녀가 어느 한 순간 또 다른 길을 찾아 이 땅을 떠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아는 피아니스트 한지연에겐 떨칠 수 없는 수행자의 이미지가 겹쳐 있다. 그러니까 이건, 피상적인 감상에서 비롯된 섣부른 생각이 아니다. 이 아름다운 앨범에 담긴 연주가 보여준 그녀의 표정이 그렇다. 언젠가 때가 되면, 혹시라도 망설이고 있을지 모를 한지연에게 출국을 권해야 할까. 물론 선택은 온전히 그녀의 것이다, 지금까지 늘 그래왔던 것처럼.
- 김 현 준 (재즈비평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