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보울스 (The Bowls) [Blast From The Past]
밴드 더 보울스는 확실히 특이한 팀이다. 2010년대 중반 맨 처음 음반을 발표했을 때부터 로큰롤과 하드록, 블루스 록에 경도되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은 밴드는 살랑거리는 모던 록이나 트렌디한 일렉트로닉 사운드에는 좀처럼 눈길을 주지 않았다. 20대 초반의 나이에 50여년 전 음악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사운드의 귀향은 불가사의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더 보울스의 개별성과 고유성은 매 음반마다 새롭게 피어났다. 더 보울스는 끊임없이 대중음악의 수많은 유산들을 호흡하며 소화했다. 록과 사이키델릭에만 머무르지 않은 밴드는 재즈와 팝까지 섭취했다. 2019년 한 해에 정규 음반을 두 장이나 발표한 이들은 3년만에 세 번째 정규 음반 [Blast From The Past]로 복귀했다.
‘과거로부터의 폭발’이라는 새 음반의 제목은 그동안 더 보울스가 들려주었던 음악들을 자연스럽게 연상시킨다. 테크놀로지의 발전으로 인해 이제 과거와 현재는 좀처럼 분리되지 않는다. 과거는 끊임없이 현재로 호출되며 일상으로 진입한다. 대개 윤색되기 마련인 과거는 좋았던 날들에 대한 향수를 부풀리며 현재를 외면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변하지 않고 침범할 수 없는 삶의 진실로 작동하기도 한다. 그리고 지나간 것들은 금세 그리워진다.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고, 재현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옛 노래를 다시 듣고, 옛날 영화를 반복해 보는 이유는 그 시간만이라도 지난날의 공기를 호흡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더 보울스는 이번 음반에서도 전작들에서 그러했듯 대중음악의 오래된 유산을 능숙하게 조합한다. 그래서 이 음반을 듣는 이들은 분명 12곡의 노래가 흐를 때마다 여러 뮤지션의 이름과 대표작을 떠올릴 것이다. 특히 밴드의 합창이 펼쳐지는 순간마다 팝 음악의 가장 빛나는 순간들을 떠올리며 젖어들거나 짜릿해지지 않기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 순간 누군가의 음악을 모사했다고 폄하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더 보울스는 모방하지 않고 현재화 하며 자기화하기 때문이다. 팝과 록 사이를 미끄러지듯 오가는 더 보울스의 새 음반은 예스러우면서도 수수하고, 소박하면서도 매끄럽게 반짝인다.
모든 곡은 밴드의 보컬이며, 기타리스트이고, 퍼커션과 키보드, 에프엑스까지 도맡은 서건호가 직접 썼다. 기타리스트 박준성과 베이시스트 윤현섭, 드러머 이학수, 키보디스트 임성현까지 더 보울스의 다섯 멤버는 밴드 타히티80의 베이시스트 Pedro Resende와 함께 2년간 작업해 이 음반을 발표했다. 사랑에 대한 갈망으로 시작하는 음반은 실패한 사랑을 노래하기도 하고, 괜찮은 척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기록하기도 한다. 광장에 깃들었다가, 삶을 어루만지며 가야 한다 다짐할 때도 있다. 그런데 그 순간마다 보컬과 연주를 아우르는 따뜻하고 서정적인 사운드의 톤은 이 음반이 복고적인 질감으로 희망을 이야기함으로써 특별해지는 더 보울스의 새 음악임을 분명히 한다. 멜로트론, 비브라폰, 밴조, 신시사이저, 하몬드 오르건, 하프시코드와 현악기까지 다채롭게 활용한 사운드는 어떤 이야기도 서글프거나 심각하지 않게 감싸준다.
실패하면서도 원망하지 않고, 고민하면서도 절망하지 않는 노랫말의 태도는 더 보울스가 직조한 소리의 조합과 파장으로 직결된다. 아트록과 선사인 팝의 자장까지 느껴지는 음악은 늘 많은 악기를 동원하면서도 좀처럼 압도하지 않고 내내 다정하다. 그것은 더 보울스가 이번 음반을 통해 그럼에도 잘 될 거라고,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것들이 우리를 사랑한다”는 믿음은 수록곡마다 활용한 악기의 부드러운 앙상블로 실현된다. 중첩된 소리의 파노라마는 번번이 눈부시고 싱그러운 에너지처럼 밀려온다. 그래서 음반을 듣다보면 귀로부터 마음까지 이어지며 편안하게 충만해진다. 곡의 부피와 서사가 다른 곡에서도 일관된 발랄함과 해사함은 듣는 이들을 반드시 행복하게 만든다. 그것이 이 음반의 가장 큰 미덕이다.
그리고 이 음반은 공들여 쌓은 탑처럼 수많은 소리를 갈고 닦아 끼우고 맞추었으나 이음새가 보이지 않는 완성품이다. 소리의 앞과 뒤에 어떤 소리가 함께 있는지, 소리의 구조가 어떻게 단단해졌다가 금세 허물어지고 다시 솟구치는지 추적하듯 듣다보면 음반은 더할 수 없이 흥미진진해진다. 6번 트랙이자 셀프타이틀 곡인 <Blast From The Past>의 역동에 홀딱 반했다가 첫 곡으로 돌아와 다시 듣기 시작하면 더 많은 소리가 들리는 작품집이다. 좋은 영화는 여러 번 다시 보는 영화라고 했던가. 이 음반 역시 마찬가지이다. 오래도록 사랑했던 명반들처럼 곁에 두고 들을 때마다 함박눈 같은 기쁨이 소복소복 쌓일 것이다..
서정민갑(대중음악의견가)
‘No gimmicks, No Bullshit, JUST GREAT MUSIC.’
“No gimmicks, No Bullshit, JUST GREAT MUSIC.” 이제는 중견 밴드라 할만한 10여 년 구력의 더 보울스(The Bowls)의 세 번째 앨범 [Blast From The Past]의 선전 문구다. 쉽게 풀자면 “허튼수작 없이 훌륭한 음악으로만 승부하겠다”라는 의지의 표명이다. 변함없이 자신감이 넘치는 이들은 이번에도 몇 수나 더 발전했다. 전작인 [ZERO FEAR OF WATER](2020)에서부터 함께 했던 프랑스의 밴드 타히티 80(Tahiti 80)의 베이시스트 페드로 레센데(Pedro Resende)의 프로듀스로 50여 곡의 데모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편곡부터 시작해 개별 트랙의 악기 구성, 연주, 믹스까지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한다.
페드로 레센데(Pedro Resende)는 타히티 80 외에 망소(Manceau), 라스트 디테일(The Last Detail) 등과 같은 자국의 팝 밴드를 진두지휘해온 유능한 프로듀서로도 유명하다. 그뿐만 아니라 타히티 80의 보컬인 자비에르 보이어(Xavier Boyer)도 노랫말과 영어 발음, 음악 전반에 대해 조력에 나섰다. 마스터링에는 캐나다 출신의 엔지니어 필립 쇼 보바(Philip Shaw Bova)가 참여했다. 앤디 셔프(Andy Shauf), 바하마스(Bahamas), 데벤드라 벤하트(Devendra Banhart), 파더 존 미스티(Father John Misty) 등과 같은 뮤지션의 믹스, 마스터링 엔지니어로 활약해왔다. 특히 2019년 바하마스의 작업으로 ‘그래미상 최우수 엔지니어드 앨범, 논-클래식 부문’의 후보에 올랐던 인물이다.
꽤 오랜 시간 동안 창작에 있어 자급자족해왔던 더 보울스 멤버들은 페드로의 감독 아래 다른 종류의 자신감을 얻었다. 멤버 전원이 만족하는 작품을 함께 만들어냈고, 서로는 더 돈독해졌다. 작품의 발단이 되었던 영화 [Blast From The Past](1999)에서 느꼈던 여유와 낭만, 순수함과 함께 가벼운 웃음까지 전하려 했다. 그리고 뻔하지만, 행복한 결말까지 담고자 했다. 시간이 흘러 이 앨범도 과거의 것이 된다면, 누군가에게 ‘과거의 멋진 기억(Blast from the past)’이 되기를 희망한다.
2022년 2월
보울스의 오랜 음악 친구 신현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