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한 조각, 마당을 알맞게 적시곤 수줍게 사그라드는 빗소리, 이름 모를 꽃들의 다발과 깊은 잠. 당신과 보내는 시간에 머물렀으면 하는 것들을 적어 봅니다. 함께 훌쩍 떠나 돌아오지 않는 여행을 상상하는 취미가 생겼거든요. 겁이 많은 우리는 아마 쉽사리 떠나지 못하겠지만, 그런 건 역시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날은 우산을 쓰지 않아도 좋을 정도의 비가 내린다면 좋겠습니다. 차분한 기대가 우리 두 사람을 충분히 스몄으면, 작은 차의 바퀴가 축축한 바닥을 면면히 기억했으면 해요. 그 길을 다시 돌아오는 일은 이제 없을 겁니다. 작은 짐을 모두 풀고 잠시 세상의 침묵을 몰아 듣는 일. 그 이후의 일정은 아직 생각해두지 못했습니다. 남은 부분을 함께 채워나갈 수 있다면 좋겠어요. 그렇게만 된다면, 사실 어딘가로 영영 떠나는 일 따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른 봄의 어느 날, 작은 소망을 담아 보냅니다.
p.s: 아프고 힘들었던 나의 곁을 묵묵히 지켜줬음에 감사해. 내가 괜찮아진 건 오롯이 네 덕이야. 오랜 시간 갚아 나갈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