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영산회상(管樂靈山會相)은 상령산(上靈山)·중령산(中靈山)·세령산(細靈山)·가락덜이(加樂除只)·삼현도드리(三絃還入)·염불도드리(念佛)·타령(打令)·군악(軍樂)으로 18~19세기 조선의 궁중과 민간을 넘나들며 삼현육각 문화를 대성시킨 세악수(細樂手)들이 연회에 거상악, 행진에 취타와 더불어 가장 많이 연주하던 대풍류곡이다.
본래 영산회상(靈山會相)은 궁중에서 민간에 이르기까지 수용층이 두루 넓었던 음악이다. 세조(世祖, 1417 ~ 1468)때의 음악을 담은『대악후보 大樂後譜』와 성종(成宗, 1457~ 1495)때의 『악학궤범 樂學軌範』를 통해 원래 ‘영산회상불보살(靈山會相佛菩薩)’이라는 가사가 있는 성악곡이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후대로 내려오면서 노래가 빠지고 지금의 조곡(組曲) 형태에 이르렀는데, 현재 전해지는 영산회상은 현악영산회상(줄풍류,중광지곡), 관악영산회상(대풍류, 삼현영산회상, 표정만방지곡), 평조회상(유초신지곡, 취태평지곡) 세 가지이다. 관악영산회상은 궁중 정재 반주음악으로도 많이 쓰이며, 영산회상이 무용장단에 사용된다는『양금신보(梁琴新譜)』의 기록을 통해 관악영산회상이 현악영산회상보다 먼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음반에서는 기존 정악합주의 편성과는 달리, 대금, 피리, 대아쟁, 장구의 사중주로 구성하였다. 대아쟁이 전체 음악의 주요 골격을 이루는 가운데 저음부 역할뿐 아니라 해금이나 피리의 연음을 응용하기도 하고 삼현도드리와 염불도드리를 독주로 하는 등 보다 더 적극적인 표현을 시도하였으며, 꿋꿋한 피리 선율과 청아한 대금의 연음은 여백에 수를 놓듯 절제와 자유를 넘나드는 풍류의 매력을 극대화하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