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것들만 예술로 창조되는 건 억울하고 부당해'
짜증나게 더러운 것들이 내 삶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단 걸
깨달았던 시점에 그런 생각을 했었던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못난 덩어리들은 언제나 내 머릿속 쓰레기통에 가득 차 있습니다.
어느 순간엔 창피해서, 어느 순간엔 감춰야 해서,
여러 이유들로 버려졌던 못난 덩어리를 주워 모아 재활용할 거고,
아름답지 않은 것들로 예술 어쩌구저쩌구 하는 걸 만들 거예요.
1. 아니어도 돼
소중한 사람들을 떠올리며 마음이 시큰시큰할 때,
그럴 땐 유별나게 특별하고 귀한 사랑을 느끼곤 합니다.
내가 그 애의 가족이나 애인이 아니어도 상관이 없을 것만 같고,
무한한 사랑을 줄 수 있을 것만 같은 애틋함에 잠기는 순간.
그 순간의 감정을 잊고 싶지 않아 음악으로 기록하려고요.
2. 이상해 보여
남들보다 유별나게 기억력이 좋아요.
남들은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들을 기억하는 재주가 있지만
생각보다 좋지만은 않아요. 다들 앞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어쩐지 나만 혼자 뒤로 걸어가는 기분이거든요.
되게, 나만 되게 이상해 보여요.
3. 우린 버려졌다가 주워져
누굴 만났다가 헤어지는 건 사실 누군가에게 주워졌다가 버려지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주워졌다가 다시 버려지는 일이 아닐까요.
언제 버려질지는 모르지만 속는 셈 치고 다시 주워지는 그런,
부질없는 중독 같은 일.
4. 그래서 그랬던 거야
지나고 보면 너무 선명하게 보이는 정답들이 짜증 납니다.
그때 내가 뱉은 한마디는 조금 덜 날카로웠어야 했고,
그때 홧김에 밀어낼 게 아니라 안아줬어야 했고.
왜 당시에는 그 쉬운 답을 찾지 못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지금보다 어리고 멍청한 날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하나하나 말해주고 싶네, 이건 이래서, 그건 그래서 그랬던 거라고.
5. Whiskey n Whiskey
정적인 밤은 나에겐 대개로 무료한 느낌이고,
어느 기점을 시작으로... 망가지더라도 시끄러운 밤이 나아요.
그렇기에 이제 익숙한 불건강으로 채워지는 새벽들.
그게 뭐든, 밤과 새벽엔 망쳐버린 나를 더 망쳐주는 게 편한 거죠.
시끄럽게 위스키나 잔뜩 마시고 바보처럼 취해버리는 게.
6. 슬리퍼
왜 사랑이라는 감정은 소모품에 불과한 걸까요.
왜 하면 할수록 굳이 끈을 계속 묶어야 한다거나 굽이 있어 신기 어려운 사랑 말고
신고 벗을 때 가장 편한 슬리퍼 같은 사랑을 선택하게 되는 걸까요.
물론 그쪽이 편하기야 하겠지만... 뭔가 좀 싫다.
7. 말리부오렌지
한적한 바다 근처에서 살고 싶었지만, 대로변 바로 앞에 사는 나.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을 원했던 적 없지만,
어느샌가 친구를 만날 때면 옷장을 오래 뒤적이게 되는 나,
더 똑똑하고 더 망가지지 않은 것처럼 나를 꾸며대는 나.
원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인생이 흘러갈 때,
어쩌면 나는 우스운 시트콤 속에 갇힌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때때로는 유쾌하게 웃어넘기는 게 도움이 될 때도 있어요.
우스운 슬픔을 담아, 말리부에 오렌지를 타서 먹는 상상을.
8. 반복되는 모든 게 날 괴롭게 해요
요 근래 가장 많이 하는 생각, 가장 많이 느끼는 감정.
어떤 레일 속에 갇혀서 똑같은 곳을 빙빙 돌고만 있는 것 같았어요.
해소가 되지 않는 이 지긋지긋함도 일종의 중독일지도...
분명 이 감정도 희미해지고 잊히는 날이 오겠죠.
그런 날이 오면 이 지긋지긋함을 그리워하려나? 윽.
9. 고전적 조건형성
파블로프의 개처럼, 무의식중에 어떠한 물건이나 장소나 향기 등등, 무언갈 볼 때 누군가를 떠올릴 때가 있어요.
아무리 그 대상을 덮어놓고 다른 색으로 칠해도,
기억 속의 장치들은 변하지 않으니 습관처럼 딸려오는 거죠.
미련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어요, 무의식이란.
10. 기억나지 않는 것들
자주 가던 동네를 걸으면서 자주 가던 가게를 찾으러 갔던 날.
두리번대다, 그 가게는 이미 문을 닫아버렸다는 걸 알게 된 그날.
돌이켜보니 가게의 모습도, 나눴던 이야기도 이젠 흐릿했어요.
동시에 또렷하게 기억나는 향기나 문장은 어딘가에 숨어있었고요.
기억하고 싶어도 흐려지는 것들,
기억하기 싫어도 선명한 것들.
11. 너
사람들은 서툴고 미성숙할 때에 남김없이 사랑을 하는가 봐요.
또 저마다의 '너'는 그 시간이 끝나도 마음 한편에 남는가 봐요.
이 노래 안에 담겨있는 모든 것에서 졸업하고 싶었어요.
녹음을 하고, 음원으로 가공하며 마침표를 찍고도 싶었고요.
드디어 완성이다.
안녕, 너.
12. 너의 농담
혼자 여행을 가서 바다를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특히 기념품 가게를 구경하면서
'지금 나에게 없는 추상적인 것들’을 살 수 있는 가게가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
할아버지의 스쿠터도, 친구의 웃음도, 그 애의 농담도.
그렇게 떠올리다 보니 나에겐 없어진 것들이 많기도 하대요. .... ....